고객들이 은행 창구에서 달러를 살 때 적용하는 원-달러 고시환율이 2년여 만에 처음으로 1000원을 넘어선 14일 오후 서울 중구 외환은행 지하 1층 영업부 환전창구에서 한 고객이 전화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요동치는 외환시장
최약체 달러보다 원화 더 약세…투기적 달러매수 횡행
정부 “감내할 수준” 되풀이…“물가 4%까지 오를수도” 국제 원자재값 급등에다 환율 급등까지 겹쳐 물가상승 압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 3중 악재 탓에 정부가 불과 1주일 전에 내놓은 올해 거시경제 목표가 벌써 흔들리고 있다. ■ 외환시장 악순환=최근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곳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타이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급등한 원자재값을 달러화에 대한 자국통화의 강세로 조금이나마 상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달러화로 표시된 원자재값이 오르고, 달러 가치도 오르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성재은 연구원은 “외국인들이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아주 좋은 나라가 한국”이라며 “달러가 필요할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주식과 채권 등을 팔아 달러로 바꿔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 외에도, 수입업체 등의 달러 수요 증가와 외국인들의 주식 배당금 송금 철이 다가온 것도 환율 상승의 요인이다. 최근에는 자산운용사들도 달러 매수에 나서, 투기적 수요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외펀드를 많이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지난해 선물환을 대량 매도해 놓았으나, 올해 들어 국외펀드 수익률이 떨어지고 달러값까지 오르자 손실을 만회하려고 최근에는 무더기 선물환 매수세로 돌아섰다. 선물환 매수는 바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홍승모 신한은행 과장은 “국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선물환 매수를 해서 환헤지를 해놓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외환시장은 대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제2의 아이엠에프’라는 말까지 등장하며,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정부, 손놓은 채 뒷짐만=금융시장은 요동치는데도 정부는 이렇다할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다. 때마침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각 부처가 대규모 사무실 이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다 국장급 이하 실무 진용 인사도 제때 이뤄지지 않아 업무 공백이 길어진 탓도 크다. 이 때문에 과장급 인사가 마무리되는 다음주 초반 이후에야 비로소 정부도 본격적인 대응태세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더 큰 이유는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자체에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세계적 달러 약세’ 현상에도 원-달러 환율만 가파르게 오르는 것을 두고, 정부가 수출업체의 채산성을 높여 성장률을 끌어올리고자 원화 약세를 묵인하고 있다는 해석이 팽배하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중경 차관 주재로 환율 상승 등 현안 점검회의를 열었지만, 아직까지는 감내할 수준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태도는 물가 불안을 그대로 지켜보자는 것과 같다. 한국은행의 분석을 보면, 환율이 1% 오르면 국내 물가엔 0.06%만큼 추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 올해 들어 14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6.12%나 올랐다. 정부는 지난 10일 올해 원-달러 평균 환율을 940원대로 보고, 물가 상승률이 3.3%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업체에 유리하도록 환율을 높게 유지해 의도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은 사실상 국내 물가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정책 기조가 유지된다면, 올해 물가는 3%대 후반이나 심지어 4%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우성 안선희 기자 morgen@hani.co.kr
정부 “감내할 수준” 되풀이…“물가 4%까지 오를수도” 국제 원자재값 급등에다 환율 급등까지 겹쳐 물가상승 압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 3중 악재 탓에 정부가 불과 1주일 전에 내놓은 올해 거시경제 목표가 벌써 흔들리고 있다. ■ 외환시장 악순환=최근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곳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타이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급등한 원자재값을 달러화에 대한 자국통화의 강세로 조금이나마 상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달러화로 표시된 원자재값이 오르고, 달러 가치도 오르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성재은 연구원은 “외국인들이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아주 좋은 나라가 한국”이라며 “달러가 필요할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주식과 채권 등을 팔아 달러로 바꿔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 외에도, 수입업체 등의 달러 수요 증가와 외국인들의 주식 배당금 송금 철이 다가온 것도 환율 상승의 요인이다. 최근에는 자산운용사들도 달러 매수에 나서, 투기적 수요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외펀드를 많이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지난해 선물환을 대량 매도해 놓았으나, 올해 들어 국외펀드 수익률이 떨어지고 달러값까지 오르자 손실을 만회하려고 최근에는 무더기 선물환 매수세로 돌아섰다. 선물환 매수는 바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홍승모 신한은행 과장은 “국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선물환 매수를 해서 환헤지를 해놓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외환시장은 대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제2의 아이엠에프’라는 말까지 등장하며,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정부, 손놓은 채 뒷짐만=금융시장은 요동치는데도 정부는 이렇다할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다. 때마침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각 부처가 대규모 사무실 이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다 국장급 이하 실무 진용 인사도 제때 이뤄지지 않아 업무 공백이 길어진 탓도 크다. 이 때문에 과장급 인사가 마무리되는 다음주 초반 이후에야 비로소 정부도 본격적인 대응태세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더 큰 이유는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자체에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세계적 달러 약세’ 현상에도 원-달러 환율만 가파르게 오르는 것을 두고, 정부가 수출업체의 채산성을 높여 성장률을 끌어올리고자 원화 약세를 묵인하고 있다는 해석이 팽배하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중경 차관 주재로 환율 상승 등 현안 점검회의를 열었지만, 아직까지는 감내할 수준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태도는 물가 불안을 그대로 지켜보자는 것과 같다. 한국은행의 분석을 보면, 환율이 1% 오르면 국내 물가엔 0.06%만큼 추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 올해 들어 14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6.12%나 올랐다. 정부는 지난 10일 올해 원-달러 평균 환율을 940원대로 보고, 물가 상승률이 3.3%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업체에 유리하도록 환율을 높게 유지해 의도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은 사실상 국내 물가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정책 기조가 유지된다면, 올해 물가는 3%대 후반이나 심지어 4%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우성 안선희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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