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수십차례 요동 친 17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딜링룸의 환율판이 오작동을 일으켜 아예 꺼져 있다(왼쪽 사진). 외환시장 마감을 앞둔 3시께 다시 작동이 시작돼(가운데 사진), 이날 종가가 고시됐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요동치는 금융시장
“변동성 줄이기라도…” 대책마련 요구 높아
“경제위기 운운하며 위기의식만 조장” 불만
한은 “환율상승 다소 빨라…상황 예의주시”
“변동성 줄이기라도…” 대책마련 요구 높아
“경제위기 운운하며 위기의식만 조장” 불만
한은 “환율상승 다소 빨라…상황 예의주시”
미국발 신용위기의 불씨가 다시 커져 그 충격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대요동을 치고 있다. 시장에선 자칫 국내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서둘러 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 한국 금융시장이 유독 취약한 이유는?=17일 국내 금융시장은 하루 종일 출렁였다. 원-달러 환율은 하루에 30원 이상 폭등했고 주가는 장중 한때 60포인트 이상 곤두박질쳤다.
최근 국내 금융시장은 다른 나라들에 견줘 미국발 충격에 유독 두드러지게 출렁이고 있다. 여기엔 미국발 신용위기가 전 세계로 전염되는 과정에서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는 국외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국내 금융시장을 손쉽게 투자자금을 빼내는 창구로 이용하는 점이 한몫하고 있다. 또 외국인이 국내 12월 결산 법인들의 주식 배당금으로 받아갈 약 5조원의 자금이 4월 말까지 대기 중인 것도 가파른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지자, 한국은행은 안병찬 국제국장을 통해 “환율 상승 속도가 다소 빠른 감이 있다. 외환당국은 환율 상승 속도에 우려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구두개입 형태로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칼자루를 쥔 기획재정부는 하루 종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김규옥 재정부 대변인은 이날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환율과 관련해선 노 코멘트”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장에선 더이상의 혼란을 피하려면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정책당국은 시장의 변동성을 줄여줘야 하는데, 정작 주무부처 장·차관은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대통령은 ‘경제위기 초기’ 운운하며 위기의식만 조장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환율이 너무 갑자기 오르면 물가가 크게 오르고 인플레 기대심리가 증폭돼 악순환이 시작된다. 뱡향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변동성을 줄여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규제 완화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다. 시장 안정에 정부가 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가 안 나서는 이유는?=‘침묵’이 길어지자 정부가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원-달러 환율 상승을 오래 끌고 갈 것이란 기대심리가 시장에 더욱 빠르게 퍼지고 있다. 1월 경상수지 적자(26억달러)가 11년 만에 최대치로 늘어나는 등 경상수지가 빠르게 악화하면서 정부가 환율 상승이라는 손쉬운 카드를 그 해법으로 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재정부 주변에선 정부가 환율 상승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움직임은 한동안 지나치게 원화가 고평가돼 있던 것을 되돌리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엔 적어도 ‘(환율의) 방향은 맞다’는 판단이 바닥에 깔려 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려 해도 사실 마땅한 카드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 외환시장은 이미 하루 평균 거래액이 40조원을 웃돌 만큼 규모가 커진데다, 정부가 국내외 투기자금이 자유로이 활개치도록 각종 규제를 풀고 시장의 빗장을 완전히 열어젖힌 것도 스스로 발목을 잡은 꼴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상황은 미국의 과잉소비와 아시아의 과잉수출로 굴러가던 불균형 상태가 깨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는 과정”이라며 “마땅한 수단도 없고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어 섣부른 개입은 더 큰 부작용만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금까지 ‘일단 관망’ 행보를 보이는 것도 선뜻 ‘때’를 찾기 힘든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 재정부 관계자는 시장 개입 시기를 묻자 “불이 활활 타오를 때에는 물을 곧장 끼얹어선 안 된다”는 말로 고민을 드러냈다. 최우성 안선희 기자 morgen@hani.co.kr
미국 신용위기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 흐름도
한국 금융시장 충격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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