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매도와 대차거래 제도 비교
개미들 공매도 최대 피해자…풋옵션 거래는 위험
한광덕 기자의 투자 길라잡이/
타임머신을 타고 자동차 산업이 막 시동을 거는 시대로 돌아간다면 어떤 자동차 회사의 주식을 사게 될까? 선두 업체냐, 저평가된 회사냐, 아님 독과점 부품업체냐….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1999년 강연에서 이에 대해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산업의 이행기에는 승자보다는 패자를 고르는 게 훨씬 쉬운 선택이다. 따라서 자동차 주식을 살 게 아니라 ‘말’을 공매도(빌려서 파는 것)해야 한다.”
요즘 세계적으로 공매도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거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신용위기의 주범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을 포함해 19개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했다. 한국의 ‘아고라’에서도 개미들만 죽이는 ‘대차거래·공매도를 폐지하라’는 서명이 벌어지고 있다.
■ 미국발 사기성 공매도 공매도란 말 그대로 물건이 없는데도 파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지금은 없지만 곧 물건이 들어온다는 전제가 성립해야한다. 대차거래는 주식을 서로 빌려 주고 빌려 오는 계약이다. 주가가 앞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싼 값에 사들여 되갚아 차익을 얻으려 한다.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사람은 그냥 놀리느니 중간에 빌려주는 대가로 수수료 수익을 올리려 한다.
그런데 빌려 오지도 않았으면서 있는 척하며 주식을 팔면 어떻게 될까? 또 수수료가 탐나서 같은 주식을 이중으로 빌려주면 어떻게 될까? 결제 불이행 위험이 커지며 증시 시스템이 신용 공황에 빠질 것이다. 미국이 이번에 제한한 것은 정상적인 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가 아니라 이같은 차입없는 공매도(naked short selling)다. 이런 사기성 매도는 다행히 한국에선 금지돼왔다.
■ 대차거래는 악인가 증시의 구원투수로 가끔 등판하는 국민연금이 되레 지난해부터 외국인에게 매도용 주식을 빌려주고 수백억원대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개미들이 격분하고 있다. 또 분위기 파악을 못한 기획재정부가 이를 모범 삼아 1조원 규모의 정부 보유 공기업 주식을 내년부터 빌려줘 재테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개인들을 배제한 그들만의 리그라는 점에서 대차거래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시장의 과열과 거품을 해소하는 긍정적 작용도 한다. 가치에 비해 싸다고 믿는 주식을 사는 것과 가치에 비해 비싸다고 의심한 주식을 파는 것은 순서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다.
■ 하락장에서 곰과 사귀기 개인도 주식을 빌려서 팔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증권사가 자체 보유하거나 한국증권금융이 신용 담보로 잡아놓은 주식을 빌릴 수 있는 ‘대주’를 이용하면 된다. 최근엔 거꾸로 개인이 보유한 주식을 기관에게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대여’도 가능해졌다.
대주로 판 주식은 반드시 기한안에 되사서 반환해야 한다. 불행히도 주가가 계속 오르면 담보가 부족해지면서 주식을 되사야하는 수요(숏 커버링)가 몰리고 이에 따라 주가는 더 가파르게 상승(숏 스퀴즈)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약세장의 악재인 증자가 예정된 종목을 빌려서 파는 전략도 생각할 수 있다. 영국의 한 모기지 업체는 공매도 펀치를 얻어맞고 신주 발행이 힘들 정도로 주가가 폭락했다. 하락장이 힘들다고 개인이 선물 매도나 풋옵션 거래에 나서는 건 더 위험하다. 그냥 현물시장에 지금의 ‘황소형’ 상장지수펀드와 역방향인 ‘곰’ 인덱스를 들여와 지수 하락 헤지로 활용하는 게 속 편할것 같다.
kdhan@hani.co.kr
한광덕 기자의 투자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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