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덕 기자의 투자 길라잡이/
이승엽을 너무 좋아하는 여성팬이 있었다. 한소심이라는 이 여인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승엽 선수가 부진한 경기를 펼칠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 사정을 눈치 챈 ‘키코’라는 은행원이 한씨를 찾아왔다. ‘승짱’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우리가 당신에게 정신적 위로금을 주고 성적이 괜찮으면 그냥 신나게 응원만 하면 된다고 유혹했다. 다만 성적이 너무 안 좋거나 너무 좋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짤막하게 덧붙였다.
한씨가 관심을 보이자 키코는 구체적인 조건을 설명했다. “이선수의 국제대회 평균타율은 2할5푼이지만 더 넉넉하게 잡아 이번 대회에서 2할8푼 아래로만 쳐도 당신에게 그 차이만큼 위로금을 주겠다. 만일 1할8푼 이하로 내려가면 돈을 줄 수 없지만 설마 승짱이 그 정도도 못치겠소? ” 한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코는 이어 “만약 3할5푼 이상을 치면 반대로 2할8푼과의 차이만큼 당신이 나에게 한턱 내야 하지만 지금 승짱이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그런 걱정은 덜해도 … ”
■ 이승엽의 녹인·녹아웃 계약은 끝났고 경기는 시작됐다. 예선 7경기 결과 이선수의 평균 타율은 위로금을 받는 하한선보다 낮은 1할3푼대였다. 한씨는 정신적 충격을 전혀 ‘헤지’하지 못한 채 몸져눕고 말았다. 이때 다시 키코가 찾아왔다. 아직 4강전 포함해 두 경기가 남았는데 이 선수의 상태가 회복되고 있다니 한번 더 해보자고 부추겼다. “당신이 한턱 낼 조건을 타율 대신 홈런으로 하고 홈런 기준도 2개 이상으로 높여주겠다”고 제안했다. 두 개로 올려준 대신 돈도 두 배로 내라는 단서와 함께였다. 그 뒤 빈타에 허덕이던 이승엽은 두 방을 날려 버렸다. 문제는 한씨의 정신적 쾌감이 10만원이었다면 그 충족 비용은 20만원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 키코의 배신과 재앙 비유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여기서 드러난 환헤지 상품 키코(Knock In, Knock Out)의 모순은 두 가지다. 키코는 환율 급등 때 위험하다는 요즘 통념과는 달리 환율 급락 때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환율이 너무 내려 하한선을 한번이라도 찍으면 약속한 가격에 달러를 팔 수 있는 권리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Knock Out). 환헤지 상품에 가입했다고 생각했는데 헤지가 안 되는 것이다. 키코의 배신이다.
환율이 너무 올라 상한선을 밟으면 시장에서 달러를 비싸게 사서 낮은 약정 환율로 은행에 팔아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Knock In). 하지만 수출대금으로 받을 달러에서 그만큼 환차익이 생기므로 전체 손익은 상쇄될 수 있다. 문제는 수주대금 범위를 초과해 두세 배로 달러를 팔도록 계약을 한 ‘레버리지’키코다. 매달 100만달러를 기준으로 헤지 약정을 했지만 상한선을 살짝 건들면 200만~300만달러를 팔아야 한다. 키코의 재앙이다.
■ 키코 손실 기업 접근금지? 여러 차례 나누어 들어오는 달러 매출은 재무제표에 순차적으로 잡히는데 이를 헤지하는 키코의 손익은 한꺼번에 처리된다. 이런 시차는 당기 손익을 왜곡한다. 그렇다면 거래 만기가 다가올수록 수출대금의 환차익이 반영되면서 손익은 회복될 수 있다. 반대로 환율이 하락세로 돌아서면 키코의 평가손이 줄어들 것이다.
관건은 레버리지로 인한 달러 매도 잔액 최대치와 수출로 회수될 달러 수주 잔고에 큰 차이는 없는지, 키코의 만기와 실제 달러가 들어오는 시점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질 것인지에 있다. 분기별 재무제표와 파생상품 공시를 꼼꼼히 살펴본 뒤 환율 움직임과 연동해 투자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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