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법 시행령 개정안 29일 시행
알선·중개 등 금융사 직원 처벌 강화
재벌 수백개 개설땐 건당 과태료
계좌 없는 은행서 증권계좌 허용도
알선·중개 등 금융사 직원 처벌 강화
재벌 수백개 개설땐 건당 과태료
계좌 없는 은행서 증권계좌 허용도
오는 29일부터 불법 차명거래를 적극적으로 도운 은행 직원에 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비자금 조성이나 세금탈루 등을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하면 돈의 실소유주와 이름을 빌려준 명의인 뿐 아니라, 이를 방조한 금융회사 직원들도 형사처벌 및 행정처분을 받는다.
금융위원회는 25일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29일 시행된다고 밝혔다.
불법 차명거래가 금지됨에 따라, 이를 알선하거나 중개한 은행 등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불법 행위를 목적으로 한 차명계좌 개설이라는 사실을 직원이 몰랐거나 단순히 계좌를 개설해주는 수준에선 처벌받지 않는다.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불법 차명거래를 소개하거나 권유하는 경우만 해당된다. 예를 들어, 은행이 단체에 대한 영업마케팅을 통해 특정학교 학생들 혹은 회사 직원들의 예금을 차명계좌에 일괄 유치하는 등의 행위는 허용된다.
형사처벌뿐 아니라 금융회사와 임직원에 대한 과태료 부과 수준도 높아진다. 불법 차명거래를 알선·중개한 경우, 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되며, 특히 차명거래 한 건당 과태료가 매겨진다. 만일 재벌총수가 비자금 조성용 차명계좌를 수백개 개설했고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이 이를 도왔다면, 각 계좌마다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뜻이다. 은행 직원들은 또 앞으로 고객이 계좌를 개설할 때 불법 차명거래가 금지된다는 내용을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에도 과태료 50만원을 부과받는다.
현재는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금융회사와 임직원에 대한 과태료 부과 수준이 최고 500만원에 그친다. 실제 은행 등이 받아온 과태료는 더 낮은 수준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금융위 제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8년부터 2013년 2분기까지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금융회사가 과태료를 부과받은 액수는 1건당 평균 159만원에 그쳤다.
또 이날 금융위는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등이 최근 마련한 불법 차명거래와 합법 차명거래의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은행 창구 등에서 빚어질 수 있는 혼선 등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불법 비자금이나 도박자금 등을 숨기려는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내지 않으려고 가족 등의 이름을 빌려 계좌를 만드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연간 이자·배당소득을 합해 2000만원이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되는데, 이를 회피하려고 예금을 쪼개놓는 것도 불법 행위에 해당되는 탓이다.
증여세를 내지 않고 배우자나 자녀, 부모 이름을 빌려 계좌에 예금을 넣어두려면, 증여세 감면 범위를 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배우자 이름의 계좌에는 6억원(10년간 합산금액 기준), 아들이나 딸 명의 계좌에는 5000만원(미성년자 2000만원), 부모 이름 앞으로 된 계좌에는 3000만원까지 가능하다. 만일 자녀 이름으로 1억원의 예금을 넣어뒀다면, 이 가운데 5000만원은 본인 명의 계좌로 돌려야 하는 셈이다.
한편 이번 금융실명제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29일부터는 본인의 계좌를 개설해놓지 않은 은행에서도 증권사 계좌를 새로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은 금융회사 간 실명확인업무의 위탁근거가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은행에 계좌가 있는 경우에만 증권사 계좌를 틀 수 있었다. 금융회사들이 고객의 실명확인을 서로 맡길 수 있게 되면서, 거래가 없던 은행에서도 증권계좌 개설이 허용된 것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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