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창]
지난달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위험 징후가 떠올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실적이 크게 악화한데다 미국 법무부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실 증권을 판매한 데 대해 140억달러의 천문학적 벌금을 내라는 통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도이체방크가 2008년 금융위기 방아쇠를 당긴 리먼브러더스의 길을 밟을 수 있다고 보고 도이체방크 주식의 공매도에 나섰다. 시스템매매 전문투자회사는 도이체방크의 부실이 유럽은행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고 판단해 이들 주식으로 구성된 상장지수펀드(ETF)를 대거 매도했다.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는 어찌했을까? 로보어드바이저는 입력된 고객 투자성향에 맞춰 투자를 자동 실행하는 알고리즘이다. 최근 펀드매니저 등 자산관리 전문인력들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시장에선 과거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투자전략을 뽑아낼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의 신호를 숨죽여 지켜봤다. 하지만 위기의 징후에 걸맞은 승부수는 내놓지 못했다. 현재의 로보어드바이저는 대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태어난 존재로, 이런 위기와 관련한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해 분석을 마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앞으로 인공지능 ‘알파고’처럼 딥러닝을 통해 금융위기 데이터 분석까지 섭렵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단계 더 나아간 로보어드바이저는 인간 펀드매니저나 기존 시스템매매 투자회사와 아예 다른 길을 갈지도 모른다. 2008년 미 투자은행들과 2016년 유럽은행들의 자산 부실화, 파생상품 노출 규모 등 지표를 다각적으로 비교하곤, 인간 전문가들과 전혀 다른 추론을 내놓을 수도 있다. 펀드매니저들이 투매한 도이체방크 주식과 유럽은행 상장지수펀드를 오히려 쓸어담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아직 가상일 뿐이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세계엔 아직 ‘알파고’는 등장하지 않았다. 현재의 로보어드바이저는 자산을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배분하는지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궁금증과 의구심을 자아내는 ‘블랙박스’ 같은 존재에 가깝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온라인으로 고객의 위험선호 성향을 파악한 뒤 적절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관리해주는 자문서비스다. 금융회사 직원과 얼굴을 맞대는 영업점에서가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람의 개입을 제한한 채 자동화 작업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자산관리 서비스와 크게 다르다.
고객 위험성향 파악해 맞춤 서비스
알고리즘 통해 자동투자 전략 실행
낮은 수수료로 소액투자자 ‘손짓’
이용가능한 모든 정보 실시간 분석
찰나의 기회 초단타 거래 부작용도
대부분 2010년 이후 호황기 탄생
2008년 금융위기 경험 반영 안돼
블랙스완 등 충격 대응능력 의문
국내 업계 투자전략 비공개도 문제
판매보수 위주 전략 쓰나 의구심도 로보어드바이저는 온라인 서면 문답을 통해 얻은 고객 정보로 투자목적과 위험성향을 파악한다. 고객에게 적합한 투자상품의 유형을 추린 뒤 주식과 채권 등 맞춤형으로 자산을 배분한다. 주로 비용이 적게 들면서 유동성이 풍부해 언제든지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를 매매하는 방법으로 글로벌 분산투자를 한다. 수시로 시장을 관찰해 자산가격의 변화 요인이 발생하면 포트폴리오 재구성(리밸런싱)에 나선다. 로보라는 단어가 앞에 붙다 보니 투자자들은 인공지능 알파고의 구실을 기대하지만 지금은 그 수준은 아니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로보어드바이저라는 명칭보다는 자동투자어드바이저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말한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개념은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란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절차나 방법을 뜻한다. 자산배분 알고리즘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해리 마코위츠의 현대포트폴리오이론에서 출발했다. 자산을 분산해서 투자하면 위험을 감소시키고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미국의 대표적인 로보어드바이저 회사인 베터먼트는 마코위츠의 이론을 토대로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해 위험과 기대수익의 최적 조합을 끌어냈다. 아무리 예측을 잘해도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수적인 시나리오로 위험을 줄인다. 베터먼트는 투자 기간이 길수록 원금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투자 기간이 7년 이하이면 채권에, 12년 이상이면 주식 비중을 높여 수익률을 관리한다. 알고리즘 매매의 과정은 실시간 정보 분석에서 시작된다.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주요 국가들의 경제 지표는 물론 주식과 채권에서 통화와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이용 가능한 모든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 투자전략을 설계한다. 주요 지표에 대한 시장의 예상치를 입력해 놓고 예상보다 좋게 나오면 발표가 나오자마자 영향을 받는 자산을 바로 매수하고 나쁘게 나오면 매도하는 초단타 전략을 많이 사용한다.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주문을 낸다면 이미 상황이 종료된 뒤일 것이다. 개별 기업의 공시와 회계정보도 투자 기회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인수·합병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 이벤트를 자동으로 취합해 빅데이터에 집어넣은 뒤 주가 움직임을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연봉 50만달러를 받는 애널리스트가 하면 40시간이 걸릴 일을 미국의 유명한 로보어드바이저 ‘켄쇼’는 단 5분 만에 정확하게 처리했다고 치켜세웠다. 2013년에 설립된 켄쇼에는 구글·애플·페이스북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다수 합류해 있다. 하지만 컴퓨터 성능의 향상과 함께 빠르게 발전한 알고리즘 매매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매우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가격의 괴리조차 놓치지 않고 매매할 수 있게 만들었다. 찰나의 차익거래 기회가 열릴 때 수많은 거래(고빈도 매매)가 이뤄지는 것이다. 2010년 5월6일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존스 지수가 장중 1000포인트(9%)가량 급등락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상장지수펀드 차익거래로 추정되는 고빈도 매매가 주범인 것으로 분석됐다. 앞으로 로보어드바이저의 수탁고와 거래 금액이 늘어날 경우 이러한 쏠림 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8일 ‘인공지능과 금융투자업 규제’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수십개의 알고리즘 거래 전략들이 같은 시간에 동일한 매수 신호를 제시하면 시장 가격이 급변할 수 있다”며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주는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로버어드바이저의 결정적 약점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이다. 첫발을 뗀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는 8살이지만 대부분은 2010년 이후에 태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장의 장기 사이클에 관한 데이터도 축적하지 못한 상태다. 증시의 호황기에 젖어 있는 탓에 침체와 불황으로 이어지는 대세 하락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시장의 의구심이 큰 편이다. 앞서 알파고가 올해 초 이세돌 9단과의 4국에서 학습되지 않은 패턴 앞에 혼란에 빠져 패했듯이 블랙스완이나 꼬리 위험 같은 예상치 못한 금융시장의 충격이 나타날 때 대응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한정된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자산배분 전략은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나 이례적인 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자산관리 시장의 고객은 금융자산 규모에 따라 고액자산가, 중산층, 일반 서민층으로 나뉜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이 가운데 중산층과 서민층을 주된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산이 1억~10억원 미만의 가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투자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충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고객으로 유치하려는 것이다. 기존 자산관리 서비스가 소수 부유층의 대규모 투자금액을 끌어들이는 전략이라면 로보어드바이저는 다수 대중의 소규모 투자금을 겨냥하는 형태다. 기존 자산관리 서비스에 가입하려면 대개 5억원 이상이 필요했지만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서비스는 500만원 정도만 있으면 가능할 전망이다. 미국은 로보어드바이저 수수료도 평균 0.5% 미만으로 일반 자산관리서비스(1% 이상)에 견줘 낮은 편이다. 실제 미 컨설팅 회사 에이티커니의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하는 투자자의 60% 이상이 밀레니엄(1980~2000년생) 세대로 구성됐다. 베이비붐 세대가 전통적 자산관리 서비스에 의존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자산관리 분야에 세대교체가 일어난 셈이다. 한국의 로보어드바이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소개되기 시작해 아직은 도입 초기이다. 미국은 사람의 개입 없이 로버어드바이저가 고객자산을 운용하지만 한국은 로보어드바이저의 도움을 받아 사람이 운용하는 단계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로는 쿼터백자산운용, 디셈버앤컴퍼니 등 6곳이 있다.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은 이들과 제휴하거나 자체 개발을 통해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2개 업체에서 7개의 공모펀드를 운용 중이다. 운용·판매보수를 포함한 총수수료는 0.4~1.5%로 편차가 큰 편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 같은 판매회사가 중간에 끼면 보수가 줄지 않기 때문에 고객과 운용사가 직접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펀드 유통망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일반인도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전문적인 자문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9월부터 6개월간 테스트를 거쳐 검증된 업체에 온라인 업무를 허용할 방침이다. 이처럼 로보어드바이저 사업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지만 일부에선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의 자산배분 모델이 ‘미공개 블랙박스’와 같다는 점 때문이다. 글로벌 상장지수펀드, 원자재·부동산 등 투자 대상의 유형만 나열할 뿐 실제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산배분 알고리즘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자산관리 서비스처럼 판매보수가 높은 상품 위주로 구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증권사와 사전계약을 통해 잦은 매매를 일삼아 거래 수수료가 많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투자자문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업체들은 알고리즘을 통한 구체적인 투자전략까지 공개한다“면서 “로보어드바이저의 생명은 투명성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소액투자자에게 낮은 수수료로 양질의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단기 수익률 경쟁으로 치달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쿼터백자산운용의 이승준 이사는 “시장 변동에 맞춰 짜인 알고리즘에 따라 투자비중을 조절하며 위험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아무도 예상을 못 했을 때 찾아오기 때문에 일시적인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할 때도 있을 것이다. 투자자들과 언론이 수익률 위주로만 평가하지 말고 기간별 추세를 함께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그래픽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알고리즘 통해 자동투자 전략 실행
낮은 수수료로 소액투자자 ‘손짓’
이용가능한 모든 정보 실시간 분석
찰나의 기회 초단타 거래 부작용도
대부분 2010년 이후 호황기 탄생
2008년 금융위기 경험 반영 안돼
블랙스완 등 충격 대응능력 의문
국내 업계 투자전략 비공개도 문제
판매보수 위주 전략 쓰나 의구심도 로보어드바이저는 온라인 서면 문답을 통해 얻은 고객 정보로 투자목적과 위험성향을 파악한다. 고객에게 적합한 투자상품의 유형을 추린 뒤 주식과 채권 등 맞춤형으로 자산을 배분한다. 주로 비용이 적게 들면서 유동성이 풍부해 언제든지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를 매매하는 방법으로 글로벌 분산투자를 한다. 수시로 시장을 관찰해 자산가격의 변화 요인이 발생하면 포트폴리오 재구성(리밸런싱)에 나선다. 로보라는 단어가 앞에 붙다 보니 투자자들은 인공지능 알파고의 구실을 기대하지만 지금은 그 수준은 아니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로보어드바이저라는 명칭보다는 자동투자어드바이저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말한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개념은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란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절차나 방법을 뜻한다. 자산배분 알고리즘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해리 마코위츠의 현대포트폴리오이론에서 출발했다. 자산을 분산해서 투자하면 위험을 감소시키고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미국의 대표적인 로보어드바이저 회사인 베터먼트는 마코위츠의 이론을 토대로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해 위험과 기대수익의 최적 조합을 끌어냈다. 아무리 예측을 잘해도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수적인 시나리오로 위험을 줄인다. 베터먼트는 투자 기간이 길수록 원금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투자 기간이 7년 이하이면 채권에, 12년 이상이면 주식 비중을 높여 수익률을 관리한다. 알고리즘 매매의 과정은 실시간 정보 분석에서 시작된다.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주요 국가들의 경제 지표는 물론 주식과 채권에서 통화와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이용 가능한 모든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 투자전략을 설계한다. 주요 지표에 대한 시장의 예상치를 입력해 놓고 예상보다 좋게 나오면 발표가 나오자마자 영향을 받는 자산을 바로 매수하고 나쁘게 나오면 매도하는 초단타 전략을 많이 사용한다.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주문을 낸다면 이미 상황이 종료된 뒤일 것이다. 개별 기업의 공시와 회계정보도 투자 기회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인수·합병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 이벤트를 자동으로 취합해 빅데이터에 집어넣은 뒤 주가 움직임을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연봉 50만달러를 받는 애널리스트가 하면 40시간이 걸릴 일을 미국의 유명한 로보어드바이저 ‘켄쇼’는 단 5분 만에 정확하게 처리했다고 치켜세웠다. 2013년에 설립된 켄쇼에는 구글·애플·페이스북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다수 합류해 있다. 하지만 컴퓨터 성능의 향상과 함께 빠르게 발전한 알고리즘 매매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매우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가격의 괴리조차 놓치지 않고 매매할 수 있게 만들었다. 찰나의 차익거래 기회가 열릴 때 수많은 거래(고빈도 매매)가 이뤄지는 것이다. 2010년 5월6일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존스 지수가 장중 1000포인트(9%)가량 급등락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상장지수펀드 차익거래로 추정되는 고빈도 매매가 주범인 것으로 분석됐다. 앞으로 로보어드바이저의 수탁고와 거래 금액이 늘어날 경우 이러한 쏠림 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8일 ‘인공지능과 금융투자업 규제’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수십개의 알고리즘 거래 전략들이 같은 시간에 동일한 매수 신호를 제시하면 시장 가격이 급변할 수 있다”며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주는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로버어드바이저의 결정적 약점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이다. 첫발을 뗀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는 8살이지만 대부분은 2010년 이후에 태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장의 장기 사이클에 관한 데이터도 축적하지 못한 상태다. 증시의 호황기에 젖어 있는 탓에 침체와 불황으로 이어지는 대세 하락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시장의 의구심이 큰 편이다. 앞서 알파고가 올해 초 이세돌 9단과의 4국에서 학습되지 않은 패턴 앞에 혼란에 빠져 패했듯이 블랙스완이나 꼬리 위험 같은 예상치 못한 금융시장의 충격이 나타날 때 대응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한정된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자산배분 전략은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나 이례적인 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자산관리 시장의 고객은 금융자산 규모에 따라 고액자산가, 중산층, 일반 서민층으로 나뉜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이 가운데 중산층과 서민층을 주된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산이 1억~10억원 미만의 가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투자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충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고객으로 유치하려는 것이다. 기존 자산관리 서비스가 소수 부유층의 대규모 투자금액을 끌어들이는 전략이라면 로보어드바이저는 다수 대중의 소규모 투자금을 겨냥하는 형태다. 기존 자산관리 서비스에 가입하려면 대개 5억원 이상이 필요했지만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서비스는 500만원 정도만 있으면 가능할 전망이다. 미국은 로보어드바이저 수수료도 평균 0.5% 미만으로 일반 자산관리서비스(1% 이상)에 견줘 낮은 편이다. 실제 미 컨설팅 회사 에이티커니의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하는 투자자의 60% 이상이 밀레니엄(1980~2000년생) 세대로 구성됐다. 베이비붐 세대가 전통적 자산관리 서비스에 의존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자산관리 분야에 세대교체가 일어난 셈이다. 한국의 로보어드바이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소개되기 시작해 아직은 도입 초기이다. 미국은 사람의 개입 없이 로버어드바이저가 고객자산을 운용하지만 한국은 로보어드바이저의 도움을 받아 사람이 운용하는 단계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로는 쿼터백자산운용, 디셈버앤컴퍼니 등 6곳이 있다.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은 이들과 제휴하거나 자체 개발을 통해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2개 업체에서 7개의 공모펀드를 운용 중이다. 운용·판매보수를 포함한 총수수료는 0.4~1.5%로 편차가 큰 편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 같은 판매회사가 중간에 끼면 보수가 줄지 않기 때문에 고객과 운용사가 직접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펀드 유통망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일반인도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전문적인 자문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9월부터 6개월간 테스트를 거쳐 검증된 업체에 온라인 업무를 허용할 방침이다. 이처럼 로보어드바이저 사업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지만 일부에선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의 자산배분 모델이 ‘미공개 블랙박스’와 같다는 점 때문이다. 글로벌 상장지수펀드, 원자재·부동산 등 투자 대상의 유형만 나열할 뿐 실제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산배분 알고리즘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자산관리 서비스처럼 판매보수가 높은 상품 위주로 구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증권사와 사전계약을 통해 잦은 매매를 일삼아 거래 수수료가 많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투자자문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업체들은 알고리즘을 통한 구체적인 투자전략까지 공개한다“면서 “로보어드바이저의 생명은 투명성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소액투자자에게 낮은 수수료로 양질의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단기 수익률 경쟁으로 치달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쿼터백자산운용의 이승준 이사는 “시장 변동에 맞춰 짜인 알고리즘에 따라 투자비중을 조절하며 위험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아무도 예상을 못 했을 때 찾아오기 때문에 일시적인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할 때도 있을 것이다. 투자자들과 언론이 수익률 위주로만 평가하지 말고 기간별 추세를 함께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그래픽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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