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올해 국내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69개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주총에서 실제 부결된 의안은 단 한 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10% 넘게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만 76곳에 이른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와 전략적 연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와 한국거래소 공시를 종합하면,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지난 17일 상장사 주총까지 112사의 627개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69개 안건에 반대했다. 반대 의사를 표시한 안건 비율은 11%로 지난해(10.08%)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24일 ‘슈퍼 주총일’ 의결권 행사 내용은 다음달 초에 공시된다.
국민연금 반대가 안건 부결로 이어진 유일한 사례는 지난 17일 효성 주총에 상정된 3명의 감사위원 선임안이다. 국민연금은 이들이 주주권익을 침해한 이력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감사 선임은 대주주 의결권이 3% 한도로 묶인다는 점도 부결에 힘을 실었다.
이번 주총에서는 최순실씨가 주도한 미르재단 등에 대기업이 대거 출연금을 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들 기업의 총수와 최고경영자(CEO) 이사 선임에 반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해당 안건에 거의 찬성표를 던졌다. 민감한 사안에는 기권이나 ‘중립’ 의견으로 비껴갔다. 포스코가 미르재단 등에 49억원을 출연한 사실 등과 관련해 권오준 회장의 재선임안에 대해 국민연금은 중립 의견을 냈다. 중립을 표시한 의결권은 다른 주주들의 찬·반 비율에 맞춰 배분돼 부결 여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실상 주주 권리를 반납한 셈이다. 최순실씨를 도운 인사를 특혜승진시킨 의혹 등에 휘말린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의 함영주 행장을 하나금융지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에도 국민연금은 중립 의견을 냈다. 국민연금은 현대차 주총에서 ‘한전 터 고가 매입’ 책임론이 불거진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에는 기권했다.
국민연금의 반대 안건은 사외이사(24건)와 감사(25건) 선임안에 집중돼 전체의 69%를 차지했다. 주로 장기 연임이나 경영진과 이해관계로 독립성이 취약하다는 이유였다. ‘쥐꼬리 배당’을 막기 위한 재무제표 승인안 부결도 쉽지 않았다. 주가 대비 배당률이 0.51%에 불과한 광주신세계 등 4개 상장사의 안건에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졌지만 역부족이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위상에 걸맞는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안건 찬·반 여부를 주총 전에 알려 취지에 공감하는 기관투자자나 소액주주들의 동참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책임투자의 원칙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수정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위원은 “기관투자자들의 안건 반대비율은 1~2%도 안 되는 곳이 많다”며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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