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안에 대한 국민연금의 최종 결정을 하루 앞두고, 산업은행과 국민연금기금 수뇌부가 긴급 회동을 가졌다.
13일 산업은행과 국민연금 쪽의 말을 종합하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저녁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과 만나 대우조선의 채무 재조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달 23일 대우조선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 이후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의 책임자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막판 협상 결과가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14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채무 조정안에 대한 최종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이 막판 진통을 겪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선수금환급보증(RG)과 관련된 손실 분담의 형평성 때문이다.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은 지난 12일 “대우조선이 앞으로 배를 지어 돈을 받게 되면 그 돈으로 사채권자들이 50%라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연금은 “배를 건조해 대금을 받더라도 은행의 선수금환급보증부터 해소되기 때문에 회사채 상환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반박했다.
선수금은 조선업체가 배를 발주한 선주한테서 받는 계약금이다. 선박 대금은 건조 단계별로 균등하게 받을 수도 있고 계약 때 많이 받거나 선박을 인도할 때 많이 받을 수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경기 침체로 선박 인도 시점에 대금의 절반 이상을 받는 방식이 확산돼 조선사의 자금 사정에 압박이 왔다. 대우조선도 2010년 이후 선수금이 적은 방식의 계약이 늘어 부족한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차입규모를 늘려온 게 화근이 됐다.
조선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 선박을 건조할 능력이 없으면 선주들은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이때 환급을 보증한 금융기관이 대신 갚아줘야 한다. 해운업이 호황일 당시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조선사에 선수금 환급보증을 포함한 거액의 대출에 나섰다. 수은과 산은이 대우조선에 선수금 보증을 선 금액은 각각 8조6천억원과 4조원으로 채권단 중 가장 많다.
전문가들은 조선업 구조조정의 경우 선수금 보증을 한 채권자와 그렇지 않은 일반 채권자 사이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채무조정안 합의가 어렵다고 말한다. 배가 정상적으로 건조돼 인도되면 선수금을 환급해야 할 의무가 사라져 구조조정으로 인한 과실이 선수금 보증 채권자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같은 일반 채권자는 이러한 채무조정안에 찬성할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등 회사채 투자자들이 출자전환비율을 선수금 보증액을 포함한 전체 여신 기준으로 재산정하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채 투자자의 출자전환비율은 50%이지만 이들 국책은행의 총여신 기준 출자전환비율은 9.5%에 불과하다. 이에 산은은 “선수금환급보증은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은 ‘미확정 보증’으로 출자전환 대상 채권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선수금 환급 요청이 실제로 발생해야 출자전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무담보 채권에 한해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지난해말 대우조선 사업보고서를 보면 수출입은행 등은 선수금 대지급을 위해 건조용 원자재 등을 담보로 잡아놨다.
채무조정안 부결로 대우조선이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에 들어가면 국민연금 등 채권자들도 손실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법원이 강제 채무 조정에 나서 담보채권만 100% 회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담보채권을 많이 들고 있는 국책은행의 회수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진다. 산은 관계자는 “선박을 발주한 선주들이 계약을 취소하면 선수금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국책은행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한광덕 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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