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에 따라 상환이 유예될 처지에 놓인 대우조선 회사채 금액의 60%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대출금 상환에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대우조선의 2012년 이후 증권신고서와 발행실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대우조선은 이들 회사채로 조달한 1조3500억원의 자금 가운데 8026억원을 현재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최대 채권자인 수출입은행의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조달 금액 중 시설 투자나 선박 건조 등에 쓰인 금액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당시부터 재무적인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은 오는 21일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6-2회차)에 가장 많은 1900억원이 물려있다. 대우조선은 여기서 조달한 4400억원의 자금을 산업은행의 대출 등 국책은행의 돈을 갚는 데 전액 사용했다.
지난 2012년 11월29일 함께 발행된 대우조선 회사채 2종의 운명은 공모 당시부터 희비가 엇갈릴 조짐을 보였다. 3천억원 규모의 5-1회차에는 기관투자자 8곳이 공모에 참여했지만 2천억원을 발행한 5-2회차에는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두 회사채의 차이점은 만기에 있었다. 5-1회차는 만기가 3년으로 2015년 11월29일에 무사히 상환됐다. 반면 만기가 5년인 5-2회차는 오는 11월29일 상환 예정이었지만 채무조정안으로 만기가 연장될 처지에 놓였다. 기관들이 기피한 이 회사채를 국민연금은 275억원어치 들고 있다.
이들 회사채가 발행된 2012~2015년 중에 대우조선은 5조7천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가 드러났다. 국민연금이 사채권자 집회 전날까지 만기 유예 회사채의 상환 보장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투자 판단 잘못으로 손실을 자초한 상황이 아니라, 분식회계로 숨긴 재무제표와 신용등급만 믿고 투자하다 손해를 봤기 때문에 대주주인 산은이 보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국민연금에게 주어진 선택은 차선이 아닌 차악을 고르는 퇴로가 막힌 게임이었다. 손실이 더 커질 초단기 법정관리보다는 채무조정안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회사채 상환 보장 강화라는 수확을 얻어냈다. 회사채 상환일 한 달 전에 갚아야 할 원리금 전액을 예치하고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청산가치는 보장한다는 산은의 이행 확약서를 받아낸 것이다.
또 삼성물산 합병 찬성 사례처럼 권력의 외압에 좌지우지되는 거수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연출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국민연금이 이날 새벽 채무조정안에 찬성한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국민연금의 가입자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읽힌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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