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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스튜어드십 코드’, 이래도 안 만들 건가요

등록 2017-06-10 14:02수정 2017-06-10 14:24

[친절한 기자들]
한광덕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 선임기자 kdhan@hani.co.kr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내에 ‘주주 행동주의’의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장하성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되면서 이 단어의 사용이 부쩍 늘었죠. 2006년 외국계 운용사가 내놓은 한 펀드에 장 교수가 자문을 맡아 ‘장하성 펀드’로 불린 적이 있습니다. 이 펀드는 주력 사업은 팽개친 채 그룹 총수 지원에만 몰두해 주가가 떨어진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것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승객의 안전과 편익을 최우선하는 스튜어디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스튜어드(steward)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큰 저택의 집안일을 맡아보는 관리인, 즉 집사라는 뜻이 있습니다. 고객의 돈을 맡아 관리하는 기관투자자도 집사처럼 최선을 다하도록 몇가지 지침을 만들었는데 이게 스튜어드십 코드입니다. <한겨레>에서 자본시장 취재를 맡는 제가 스튜어드십 코드의 ‘스튜어드’가 되어 최선을 다해 풀어보겠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여러분이 펀드에 돈을 맡긴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가 회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기업 가치와 투자자의 수익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만들어진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영국은 경영진의 잘못된 위험관리를 기관투자자들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자성으로 2010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습니다. 현재 네덜란드, 캐나다, 스위스, 일본, 대만 등 10여 나라가 채택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2월19일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표했습니다. 늦은 감이 있습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조사한 2016년 기업지배구조 순위에서 한국은 아시아 11개국 가운데 8위입니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은 배당에 매우 인색합니다. 2016년 코스피 시장 상장사들의 배당성향(23.8%)과 배당수익률(1.77%)은 세계 주요 증시에서 최하위권입니다. 기업 실적에 비해 주가가 형편없이 낮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자초한 요인들입니다. 한국 기업의 배당이 아시아 신흥국 수준으로만 높아져도 코스피가 3000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그동안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어땠나요? 주총장에서 회사 경영진에게 찬성표를 뽑아주는 ‘자판기’ 구실을 해왔습니다. 2015년 상장사 주총 안건에 관한 통계를 보면, 자산운용사가 반대표를 던진 비율은 1.8%, 은행은 0.4%에 그쳤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궁극적 목표는 기관투자자를 거수기에서 ‘행동하는 주주’로 탈바꿈시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내는 데 있습니다.

물론 스튜어드십 코드는 만능열쇠가 아니며 단기간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는 강제 규범이 아니어서 법적인 구속력이 없습니다. 도입 여부는 기관의 자율에 맡겨져 있고 코드를 준수하지 않아도 고객에게 그 이유와 대안을 설명하면 됩니다.

게다가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들의 반발로 제정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초안보다 내용이 후퇴했습니다. 공표된 안은 의결권 정책 마련과 공개, 투자 대상 회사에 대한 주기적 점검 등 7가지 원칙으로 구성돼 있는데, 원안에 있던 ‘기관투자자의 연대 행동’이 삭제됐습니다. 한 기관이 단독으로 대주주에게 맞설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관의 연대는 중요한 책임투자 수단입니다.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는 필요한 경우 다른 투자자와 공동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기했습니다.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원칙(ESG)이 빠진 것도 못내 아쉽습니다.

9일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기관은 사모펀드 운용사 3곳뿐입니다. 국민연금 등 덩치가 큰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은 가입 여부나 시기를 저울질하는 모양새입니다. 올해 말과 내년 초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 여러분들 중 펀드를 갖고 있는 분은 앞으로 운용사의 보고서를 꼼꼼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경영이 투명한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지, 합병이나 분할에 찬성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의문이 생기면 따져 물어야 합니다. 금융소비자의 힘이 기업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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