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최고치 행진을 주도해온 삼성전자 주가는 4일 235만원으로 장을 마쳐 1년 전 146만9천원에 견줘 60%나 올랐다. 올해 2분기 반도체 부문 매출액에서 25년 만에 인텔을 밀어내고, 전체 영업이익에서는 애플을 제쳐 세계 기술주의 ‘제왕’에 등극할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의 주식을 그동안 누가 많이 샀을까?
삼성전자의 지난 1년간 투자자별 매매 동향을 보면, 아무도 사지 않고 팔기만 했다. 외국인이 141만주 넘게 순매도했고 국내 기관(121만주)과 개인(25만주)도 내다팔았다. 기간을 넓혀 2014년 이후 지금까지 매매동향을 집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금액 기준으로 기관이 6조6천억원 가까이 팔았고 외국인(3조6855억)과 개인(4조1341억)도 앞다퉈 순매도했다.
이 많은 물량을 누가 받아갔을까? 유일하게 주식을 매수한 쪽은 세가지 투자자 유형에 잡히지 않는 ‘기타법인’으로 나타났다. 기타법인은 1년간 288만4472주를 순매수해 같은 기간 외국인·기관·개인의 순매도 합계(288만1781주)와 거의 일치했다. 2014년 이후 사들인 금액(14조4595억원) 역시 3대 투자 주체의 순매도 합계(14조4157억원)와 상쇄됐다.
기타법인이란 기관투자자로 분류되지 않는 국내 법인을 말한다. 삼성전자 주식을 쓸어담은 국내 법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이 기타법인의 순매수로 잡힌 셈이다. 지난 1년간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 수량(288만8701주)과 2014년 이후 자사주 매입액(14조6348억원)이 같은 기간 기타법인의 매수수량·금액과 각각 들어맞는다. 즉, ‘3대 투자 주체 순매도=기타법인 순매수=삼성전자 자사주 매입’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삼성전자는 2015년 10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11조4천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2016년 9월까지 꾸준히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했다. 삼성전자는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주가가 20% 상승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올 들어서도 분기별 배당 계획과 함께 9조3천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일정을 내놓고, 이를 실행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 4월에는 기존의 보유 자사주까지 소각한다고 발표했다. 과거 삼성전자가 주주들의 배당 요구에 투자가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바뀐 것이다. 2015년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싸고 미국계 주주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과 갈등을 벌이면서 주주친화정책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강송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매수 추천이 쏟아지며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는 동안 주식을 산 게 회사 자신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뜻밖이다”라며 “자사주 매입과 소각으로 점점 유통 물량이 줄어 삼성전자는 품절주가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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