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공인회계사회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업 총수의 가족중심 경영이 회계 투명성을 세계 꼴찌로 떨어뜨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빌미를 주고 있다.“
취임 1년을 맞은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61)은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유선임제 개선과 공익 감사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한국이 2년 연속 꼴찌라는 낙인이 찍힌데는 총수 일가에 의사결정이 집중된 기업 지배구조 리스크 탓이 크다”면서 “기업의 언어는 회계인데 그 언어 자체가 의심스러우니 주식이나 채권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2011년 청와대 경제수석과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 회장은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회계 투명성부터 갖춰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최 회장은 감사를 받는 기업이 감사를 하는 사람을 맘대로 고르는 현행 ‘자유선임제’를 정부가 주기적으로 감사인을 지정하는 방식을 섞은 ‘혼합선임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금융위원회의 개선안대로 기업이 감사인 3명을 먼저 뽑은 뒤 이 가운데 정부가 1명을 지정하는 ‘선택 지정제’의 경우, 3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저가 수임 경쟁이 벌어져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우조선해양 등 잇따른 분식회계에 회계업계가 ‘을’의 지위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책임을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 회장은 메모지를 꺼내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우조선은 배를 건조하는데 들어가는 제조원가를 낮춰 이익을 부풀렸다. 주문이 계속 들어올 때는 분식을 가릴 수 있었지만 갑자기 수주절벽이 닥쳐 부실이 드러났다. 이게 폰지게임(다단계 금융사기)의 종말이다. 그런데 회사는 원가 계산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수치만 알려준다. 회계사는 이 핵심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익이 나면 현금이 마를 리 없다. 여기에 의심을 품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 건 자성한다”며 회계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최 회장은 공동주택, 어린이집 등 공익성이 강한 비영리법인에 ‘공익 감사’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아파트의 경우 관리사무소의 헐값 입찰이 감사 부실로 이어져 이른바 ‘김부선 아파트’ 사태를 양산하고 있어서다. 수선충당금 등 지출 비용이 실제 제대로 쓰였는지 들여다봐야 아파트 관리비가 줄줄 새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최 회장은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감사보수와 투입시간 등 기준을 만들고 공인회계사회의 공익 감사단이 맡는 형태의 ‘아파트 감사 공영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회계사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회계자료의 전수조사가 가능해져, 지출의 원인 행위를 한 사람과 실제 지출을 한 사람을 가려내 ‘자가 승인’ 같은 조작행위를 잡아낼 수 있고, 빅데이터에서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 고객관리를 조언하는 컨설턴트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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