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공무원 등 모두 가입 가능
과당경쟁 조짐에 금융당국 ‘경고’
“사전예약, 납입한도 최대한으로”
국민은행 내부 공문 논란
직원 영업압박에 불완전판매 우려
신한 등 다른 은행도 예약 경쟁
과당경쟁 조짐에 금융당국 ‘경고’
“사전예약, 납입한도 최대한으로”
국민은행 내부 공문 논란
직원 영업압박에 불완전판매 우려
신한 등 다른 은행도 예약 경쟁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 대상이 26일부터 대폭 확대되는 것을 앞두고 은행권이 불완전판매 소지가 큰 예약가입 마케팅을 벌여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권이 과당경쟁으로 깡통계좌와 불완전판매 논란을 키웠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진흙탕 마케팅’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이에 금융당국도 최근 은행 등 퇴직연금 사업자를 불러 모아 과당경쟁 경고에 나서는 등 뒤늦게 단속에 나선 사실이 확인됐다.
16일 <한겨레>가 입수한 케이비(KB)국민은행 내부 공문들을 보면, 이 은행은 지난 13일 퇴직연금사업부가 각 부점장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개인형 퇴직연금 자동신규제’(예약가입)를 시행하면서 고객의 연간 납입한도(1800만원)를 잔여한도의 최대치로 설정하고,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지시는 채권·주식 등 수익증권형을 제외한 정기예금 형태 등으로 일원화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투자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채권이나 주식, 펀드 등 투자형 운용지시가 들어간 퇴직연금을 판매할 때는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라 점포를 방문해 투자 성향 확인을 해야 하는 등 불완전판매 차단 절차가 까다로워지는 것을 편법으로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 개인형 퇴직연금은 은행, 증권, 보험사 등에 복수 계좌로 가입할 수도 있는데도 납입한도를 최대치로 설정해 고객 선택권을 차단하려 한 의도도 엿보인다. 이럴 경우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금융소비자가 자신의 특성과 성향에 가장 적합한 상품을 고르는 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예약가입 마케팅은 납부금액과 예약이체일을 지정하는 등 실질적으로 상품판매 계약과 다를 바가 없는 실정이다.
이런 행태는 오는 26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 시행령이 발효해 대체로 월급쟁이 근로자들에게 한정됐던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격이 600만 자영업자와 공무원·군인 같은 직역연금 가입자 등 소득이 있는 모든 취업자로 대거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국민은행 등이 지나친 영업 압박에 나서면서 직원들의 법 위반 소지를 키우는 등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이 판매하는 개인형 퇴직연금은 영업점 창구에서 판매하는 게 원칙인 특정금전신탁 상품이다. 하지만 마케팅 압박으로 은행 직원들이 지점 밖에서 방문판매로 예약가입 계약을 하거나 지방의 지인과 친척들을 대리해 서류 서명을 하는 등 법 위반 영업 소지가 크다. 최근 국민은행 지역단위 조직에선 사내 메신저 등을 통해 직원당 개인형 퇴직연금 신규 가입 30~50계좌를 필수 확보하라는 지시를 전달했다. 국민은행 퇴직연금사업부가 지난 12일 공지한 문건을 보면, “제도 시행 초기에 고객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며, 시행 초기 실적에 대한 우대 차원에서 (성과지표) 가중치 1.3을 적용하고 있다”며 영업을 압박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성과 압박이 크면 고객한테 최선의 선택지를 제시할 수 없다. 자영업자는 원래 노란우산공제라는 노후자금 프로그램이 있고, 이는 개인형 퇴직연금과 달리 장사가 안 되어 폐업한 뒤 생계자금으로 상품을 중도에 해지할 때 세금을 토해내는 등의 손해가 없다는 나름의 강점이 있는데, 직원들은 개인형 퇴직연금에 노후자금을 몰아넣는 게 최선이라는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라고 말했다.
최근 전국금융산업노조가 관련 실태를 살핀 결과, 신한은행도 6월 이후 비슷한 편법으로 사전예약 마케팅을 벌이고 있으며,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사전 마케팅을 추진하다가 영업 압박을 완화하거나 중단하는 등 과당경쟁과 당국 눈치보기가 혼재해 있는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일 은행·증권·보험사 등에 과당경쟁에 대한 경고 공문을 내려보냈으며, 지난 11일엔 은행·증권·보험업권 주요 회사들의 퇴직연금 담당 임원을 불러 모아 불완전판매, 불법행위에 대한 경고를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이 판매하는 퇴직연금은 신탁상품이고 이는 원칙적으로 지점 방문 고객에게 판매하는 게 맞지만, 방문판매에 대한 유권해석을 좀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과당경쟁 문제는 우리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으며, 업계에 주의를 시키고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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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란?
이직하거나 퇴직할 때 일시금으로 받은 퇴직급여를 개인 명의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해서 만 55살 이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재직 중에도 사용자가 적립해주는 퇴직급여와 별도로 연금저축 등과 합쳐서 연간 1800만원 한도에서 자기 부담으로 추가 적립해 노후자금을 모을 수 있다. 연금저축은 최대 400만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개인형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연금저축과 통합 한도로 최대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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