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일보다 4.4원 내린 1097.0원으로 개장했다. 이 날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실시간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1년2개월만에 1100원대를 뚫고 내려갔다. 원화 강세 흐름은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9원 내린 1097.5원으로 마감해 지난해 9월29일(1098.8원)이후 처음으로 1090원대를 밟았다. 이로써 올해 개장 첫날 달러당 1208원으로 출발한 원화 가치는 9.2% 올랐다.
세계 경기의 동반 회복세와 위험자산 선호가 비달러 통화의 전반적인 강세를 이끌고 있다. 유럽 경기 개선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정상화 가능성에 최근 유로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달러 가치는 미국 세제개편안이 상원에서는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다시 주춤거리고 있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유로를 사고 달러를 팔면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신흥국 통화 중에서는 원화의 절상폭이 매우 큰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과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놓은데다 이달 말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북핵과 사드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줄고 중국과 통화스왑 연장에 이어 캐나다와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한 것도 원화 강세를 촉발했다. 그동안 저평가됐던 원화의 가치가 한국 경제의 체력에 걸맞는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급격한 환율 하락으로 수출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엔화에 견준 원화 가치가 큰폭으로 절상돼 일본과 경합하는 수출 업종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세계 경기 호조로 교역이 늘고 있어 수출 둔화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많다. 우리나라 수출은 아세안·베트남·인도 등 신흥국으로 시장 다변화를 이뤘다. 또 지금의 원-엔 환율이 기업에 타격을 줄 정도로 낮은 수준은 아니며 일본 기업이 국외 생산기지를 늘려 환율의 영향이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수출기업의 실적에 민감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 순매수를 재개한 것도 환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외국인은 최근 이틀새 국내 증시에서 1조1천억원이 넘는 주식을 쓸어담았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의 환율 하락은 ‘기업 실적 악화’의 신호로 해석하기 보다, 오히려 수출기업과 한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확산된 결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경계심리에 따른 환율 반등은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과거처럼 고환율로 수출대기업을 부양하기보다는 가계 소득 증가와 내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미국이 지난달에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묶어놓은 것도 시장 개입에 부담을 준다.
원화의 추가적인 강세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문일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기업들과 국외자산 투자자들의 달러 하락위험 회피를 위한 헤지 물량 증가로 환율이 당분간 내림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원화 가치가 균형환율에 도달해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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