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예금보험공사 제공
1997년 외환위기 때 ‘현장반장’이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0년 만에 공개 석상에서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당시를 회고하며, “다시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선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금융위기 예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29일 예금보험공사 주최로 열린 ‘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 특별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많은 국민들이 커다란 아픔과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실패한 공직자’로서 그동안 외환위기에 관해 감히 입에 올리지 않았다”며 외환위기의 원인과 극복 과정, 교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이었던 그는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하루하루 외환보유액을 점검하면서 정부 대응을 지휘한 ‘야전군 사령관’ 역할을 했다. 그는 외환위기 원인에 대해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촉발된 통화위기라는 외부적인 요인에 더해 정부 지원 아래 외형성장에만 치중해온 재벌들의 중복 과잉 투자와 과도한 부채, 이를 제어할 만한 경제·금융시스템의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요약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과 수출경쟁력이 (한국을 외환위기에서) 구한 거지, 아이엠에프 자금이 구한 게 아니었다”며 외환위기 극복 원동력을 국민 의지와 수출경쟁력, 재정건전성 등에서 찾았다.
그는 금융산업에 대한 적절한 규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경제위기의 뇌관인 금융부문의 과도한 규제와 높은 진입장벽은 혁신과 창의를 저해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규제 완화와 혁신이 위기의 단초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간과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야말로 금융혁신이 위기의 파급력을 확대한 대표적 사례”라고 짚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덮쳤을 때 한국이 상대적으로 피해가 작았던 데에도 “2003년 담보인정비율(LTV), 2005년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의 선제 대응이 큰 도움이 됐다”며 “금융당국이 경쟁을 통한 혁신을 유도하되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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