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뜻미지근하지만 평탄할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최근 ‘2018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내년에도 세계 경제가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최근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정보기술(IT)주의 거품이 꺼질 경우 국내 경제에도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지난 10년간 지속된 3저(저성장·저물가·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있다. 내년 세계 경제는 먹기에 적당한 온도의 수프와 같은 ‘골디락스’ 장세가 펼쳐질 것으로 증권사들은 전망한다. 골디락스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큼 과열되지도, 침체를 걱정해야 할 만큼 냉각되지도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완만한 물가 상승과 고용 회복, 점진적인 금리인상, 제한적인 국제유가 상승 등 평탄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세계 경제는 2003~2007년 연평균 3.5%의 비교적 높은 성장을 기록했지만 금융위기 이후인 2009~2016년에는 2.5% 성장에 그쳤다. 한국투자증권은 앞으로는 그 중간 수준인 3.0% 안팎의 성장률을 이어가는 ‘중속성장’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 경제도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골디락스를 맞이할 것으로 봤다. 최근 코스닥과 중소형주의 주가 상승을 내수회복형 골디락스의 신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골디락스와 비슷한 맥락에서 신한금융투자는 내년 세계 경제가 적당한 높이에서 안정된 ‘고원’과 같은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탄한 고원은 기복이 작듯이, 내년에는 경기의 진폭이 좁아지는 ‘고원 경제’가 될 것이란 뜻이다. 가계 부채와 소득 불평등이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고 있어 가파른 상승은 어려울 것으로 봤다. 또 고용의 양적 성장에도 임금 상승 등 질적 개선은 부족하다. 음식·숙박업 등 저임금 서비스업종의 일자리만 늘었고 정보통신·금융업과 같은 고임금 산업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이 전개됐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경제와 증시의 변곡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통화정책 정상화가 골디락스를 내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캐나다, 영국에 이어 한국의 중앙은행도 금리를 인상했다. 앞으로 괜찮은 성장률 수치가 나올 때마다 긴축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을 가능성이 높다. 유진투자증권은 기준금리가 2%에 도달하는 시점보다 한분기 앞선 내년 3분기쯤 골디락스 장세가 끝날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낙수효과 vs 분수효과
수출 호조에도 내수 부진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이른바 ‘낙수효과’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밖에서 돈을 벌어 안에서 쓰는 소규모 개방경제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수출로 얻은 달러화가 국내 소득으로 되돌아와 결국 저소득층한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게 낙수효과의 요지다. 그런데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커지고 수출 대기업의 이익이 급증하고 있지만 가계 살림은 쪼그라들고 있다. 이처럼 낙수효과가 약해진 요인으로 원유 등 수입가격 상승으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가 지목된다. 수출과 수입 상품의 교환비율인 교역조건이 개선되면 내수와의 연결고리가 복원돼 가계소득과 소비가 뒤따라 회복될 것이라고 한국투자증권은 예상했다. 내년에는 소멸된 낙수효과가 부활하면서 경제 전반에 온기가 확산될 것이란 논리다.
이에 실체가 불분명한 낙수효과에 더 이상 기대지 말고 ‘분수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반론이 등장했다. 디비(DB)금융투자(옛 동부증권)는 “낙수효과라는 미명 아래 시장논리에 맞춘 구조개혁,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명분의 규제 완화,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의 결과가 되레 성장률을 낮추고 불평등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대기업 성장에 따른 ‘떡고물’을 받아먹는 낙수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라는 얘기다. 이처럼 기업의 이윤주도 성장론이 현실성을 잃어가자 가계의 소득주도 성장론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디비금융투자는 발상을 전환해 가계소비를 증대시켜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분수효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가로 민간소비가 회복되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더불어 내수의 성장기여도를 높일 것이라는 견해도 힘을 얻고 있다.
기술주 거품은 터질 것인가
올해 세계 증시에서는 기술주가 가장 뜨거웠다. 특히 미국 증시의 사상 최고치 행진에는 기술혁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이 있었다. 하이투자증권은 미국 기술혁신의 역사가 10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는 피시와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기술혁신을 주도한 ‘윈텔’의 시대였다. 지금은 이른바 ‘팡’(FAANG,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의 시대다. 기술이 앞장서서 끌고 올라가는 ‘테크락스 경제’라고 하나금융투자는 규정했다.
내년 기술주의 운명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팡’ 기업들의 거품 논란과 반도체 호황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미국발 기술주 랠리의 변수로 금리를 꼽았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기업의 투자 증가는 필연적으로 부채를 늘리게 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기술주 랠리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그 시금석으로 테슬라가 주목받고 있다. 테슬라는 매출의 성장성은 뛰어나지만 적자가 불어나 지속적인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급 과잉도 기술주 랠리를 중단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소프트웨어가 주류인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반도체 중심의 하드웨어 성장에 의존하고 있어 수급에 민감하다. 게다가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내년까지 이어질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버 등의 수요 폭증 덕분에 반도체 호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설비 증설과 공급 확대에 나서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맞선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는 반도체가 주도했다. 만일 내년에 반도체 업황이 정점에서 꺾이고 이를 메울 수 있는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은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에서 최소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 감소가 발생해, 경제와 주식시장 모두 타격을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주는 거품 붕괴 직전의 상승이 가장 가파르다고 한다. 또 주가가 고점을 찍은 뒤 천천히 내려오는 경우는 없다. 마지막 유동성 파티를 벌이며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급락으로 끝나는 게 일반적이다. 2000년 기술주 거품 붕괴 당시 주가는 31개월간 44.5%나 떨어졌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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