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을 향한 발걸음이 더디긴 하지만 그 ‘숙성도’는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관투자가로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공개된 국민연금의 ‘책임투자·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중간보고’에 전향적인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이 19일로 1주년을 맞았지만, 당장 내년 3월 주주총회 시즌에는 긴장감이 고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자산운용사는 4곳에 불과하고 연기금은 단 한 곳도 없다. 국내 최대 ‘큰 손’인 국민연금은 아직도 ‘연구 중’에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일 국민연금의 도입 시기와 관련해 “빨라야 내년 하반기”라고 말했다.
애초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는 초안에서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관투자가 간 연대에 관한 명시가 빠져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기업의 중요 사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분을 단독으로 보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9월 말 기준 국내 주식에만 127조원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주총 영향력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다. 국민연금이 올해 들어 10월까지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안건 367건 가운데 실제 부결된 의안은 6건으로 1.6%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이 중요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경우 기관투자가는 다른 투자자와 공동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기업이 건설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때는 연대를 통해 이사회 구성원 교체 등 주주제안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지난 1일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용역을 맡은 고려대 산학협력단이 연기금 협회 설립을 국민연금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중간보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날 중간보고에는 다른 주목할 만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지금은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내용이나 사유를 정기주총이 끝난 1개월 뒤(4월 말)까지 공시하게 돼 있어, 의안 분석이 어려운 일반주주가 참고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기관투자가들도 참고하거나 연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번 중간보고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내용과 사유를 주총 이전에 공시하도록 제안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안상희 연구위원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안건 자료를 주총 개최 40일 전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며 “우리도 최소한 이사회의 주총 개최 결의일(주총 30일 전)에 안건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등에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경영권 참여 의지도 엿보인다. 자본시장법상 5% 이상 보유 주주는 지분이 변동하면 5영업일 이내 보고해야 한다. 또 10% 이상 주주는 6개월 안에 발생한 매매차익은 반환해야 한다. 다만 ‘단순투자’ 목적이면 약식 보고를 하고 단기차익 반환의무도 면제되는데,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주주제안 등을 하려면 보유목적이 ‘경영참여’로 변경돼 이런 특례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이번 중간보고에는 국민연금이 경영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경영참여’로 보유목적 변동 보고를 하는 것을 수용하라는 제안도 담겼다. 경영참여는 장기투자이므로 단기매매를 할 필요가 없어 지분을 노출하는 게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영대)도 지난 스튜어드십 코드 공청회에서 “경영참가 목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임시주총을 소집해 위임장 대결을 벌이는 상황을 의미할 수 있어 특례가 불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경영참여형(액티비스트) 펀드에 위탁해 간접적으로 주주활동을 하는 방안도 눈길을 끈다. 이는 이른바 ‘주주행동주의’를 기관의 생태계에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행동주의란 지배구조가 좋지 않거나 경영상 비효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함으로써 기업가치를 높이는 투자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사냥꾼’의 이미지로 연상되지만 행동주의는 장기적인 기업가치 극대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장화탁 디비(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경영 투명성을 요구하는 주주행동주의는 시장의 자율규제 구실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