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세청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차명계좌에 대한 고율 과세에 나섰으나, 원천징수 의무가 있는 증권사와 은행이 법적 대응에 나서며 반발하고 있어 진통을 겪고 있다.
18일 금융투자협회와 은행연합회의 설명을 종합하면, 증권사 20곳과 은행 15곳이 이달 말 차명계좌에 대한 차등과세에 불복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 등 이의 제기에 나선다. 김영진 금융투자협회 세제지원부장은 “법률대리인과 상의해 국세청에 대한 심사 청구나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 등을 결정한 뒤 소송을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
앞서 정부는 금융실명법상 계좌의 실소유주와 명의인이 다른 사실이 수사당국 수사와 금융감독원 검사, 국세청 세무조사 등으로 확인되면, 이자·배당소득의 90%를 과세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지난 2~3월 삼성증권 등 증권사들에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액 1039억원을 고지했다. 이미 과세 대상인 차명계좌 대부분이 해지된 탓에 원천징수 의무가 있는 증권사들이 먼저 세금을 내고, 실소유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소송에 참여하기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미 오래된 일이라 실소유주가 해외로 나가서 찾기 어려워진 경우도 있고, 못 내겠다며 ‘배째라’식으로 나오는 계좌주도 있다”며 “난데없는 추심 업무를 하게 생겼다”며 반발했다. 금융사가 직접 실소유주를 찾아내 세금을 걷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또 ‘이건희 차명계좌’로 촉발된 차등과세에 대한 당국의 해석이 번복된 점도 따져봐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금융사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는 국세청이 차명계좌의 실소유자에게 직접 소득세를 부과·징수하도록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돼 있다. 금융사들이 고의로 원천징수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닌 만큼 특례를 두자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금융사가 고의로 과실을 낸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법안 취지에 공감하며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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