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금융센터에 설치된 황소상. 한국거래소 제공
미국 국채금리가 4년 3개월 만에 3%를 넘어선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은 주식과 채권, 원화 가치가 동시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나흘째 이어졌다. 25일 코스피 시장에서는 외국인이 4년 10개월 만에 최대인 7631억원의 순매도 물량을 쏟아내 우려를 자아냈다.
24일(현지시각)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3.01%까지 올라 2014년 1월 이후 처음으로 3%선을 돌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핵 협상 합의 가능성 시사로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10년만기 국채금리도 고점을 낮춰 전날보다 0.02%포인트 오른 2.99%에 장을 마쳤다. 연초 2.41%에 견줘 크게 오른 수준이다. 장 초반 130포인트 넘게 오르던 다우지수는 금리 상승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악화 우려로 424.56(1.74%) 급락하는 등 미국 3대 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밀렸다.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알파벳(구글) 주가마저 4.8% 하락했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은 국제유가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70달러 선에 근접하는 등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진 탓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7.7달러로 소폭 내렸지만 2014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연초 대비로는 12% 올랐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는 70달러를 넘어선 지 오래다. 유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물가에 영향을 준다. 3월 미 근원 소비자물가는 전년동기 대비 2.1% 상승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목표치(2%선)를 웃돌았다. 이에 따라 물가 오름세를 누르기 위한 미 연준의 올해 금리 인상 횟수가 애초 3차례에서 4차례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됐다. 미 연방기금 금리선물에 반영된 올해 4차례 이상 금리 인상 확률은 46.7%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연준의 통화긴축 강화는 미 경제 성장세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난 2월 초 미국의 높은 임금 상승률이 물가를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로 금리가 급등해 증시가 폭락했던 사태가 재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24일 경기회복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3%대 금리는 기업이익 감소와 금융비용 상승을 초래해 증시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월가에서는 미 국채금리가 3.5% 수준으로 오르면 투자 자금이 주식에서 빠져나와 채권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견고한 성장 전망과 물가 상승 흐름을 함께 고려하면 3% 금리는 건강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금리가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는다면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금리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유가는 중동 정세 불안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연장 가능성으로 추가 상승이 점쳐진다. 트럼프의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국채 발행이 늘어나는 것도 금리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미 금리 상승은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으로 투자자금이 몰리기 때문이다. 5일 연속 강세를 이어오던 달러 가치는 이날 유로화 대비 약세를 보이며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원-달러 환율은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3.8원 오르며 한달 만에 1080원 선으로 올라섰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축소 기대감이 상승폭을 누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코스피는 0.62%(15.33) 내린 2448.81로 마감해 선방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주가의 향방을 좌우하는 외국인이 최근 4거래일 만에 국내 증시에서 무려 2조2605억원을 순매도해 불안한 흐름이다. 국고채 장단기 금리도 일제히 올랐다. 한-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역전된 이후 금리 차가 점차 확대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금리도 미 금리 상승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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