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투자자문사 플레인바닐라를 차린 김경식(왼쪽), 이재욱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온라인 블로그로 시작한 자본금 1억원의 미니 투자자문사가 300억원대의 고객 자산을 자문하고 증권사들과 잇달아 업무협약을 맺어 주목받고 있다.
김경식 대표(45)와 이재욱 이사(35) 둘이 북치고 장구치는 자문사 ‘플레인바닐라’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대형 증권사 금융상품개발 전문가로 일하다 의기투합했다.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 19년 경력의 김 대표는 지난달 1일 퇴직 직전까지 상품개발팀장으로 일했다. 이 이사는 엔에이치(NH)투자증권에서 8년간 근무하며 파생상품 업무를 맡아왔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조그만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먼저 잘 나가는 증권사를 왜 그만뒀냐고 물었다. 김경식 대표는 “아직 지켜보시는 분이 많은데…”라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주식투자는 자칫하면 큰 손실이 난다. 금융상품 개발업무를 하면서 아래(손실)는 막히고 위(수익)는 열려있는 투자 대안이 있는데, 왜 소액투자자들은 이런 상품을 접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집단 지성’의 힘이 필요해 평소 안면이 있던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3년 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전환사채,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 파생결합증권 등 틈새 상품을 소개했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았다.” 지금도 블로그에는 일본 리츠에서 유럽 자동차 펀드까지 다양한 투자상품을 분석한 글이 빼곡하다. 업계에서는 “사이다 콘텐츠”라는 평가가 나왔다.
가능성이 보이자 이재욱 이사가 먼저 퇴사해 지난해 9월 투자자문사 등록을 마쳤다. 현재 고객은 1300명이고 자문을 맡은 자산 규모는 약 340억원이다. 블로그의 이웃은 1만8500명에 달한다. 금융투자협회 나석진 본부장은 “대형자문사에는 못 미치지만 그 정도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이사는 “처음부터 사업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개인들을 위한 온라인자산관리 컨설팅을 표방했는데 자연스럽게 진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사는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는 주식이나 파생상품을 조언하고 추천한다. 반면 플레인바닐라는 금융상품만 자문한다. 자본금이 적어 허가된 업무가 제한된 탓도 있다. 김 대표는 “주식은 정보가 많지만 금융상품은 그렇지 못하다. 펀드 판매회사는 계열사 상품을 팔려는 경향이 강하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펀드를 비교 평가해주는 게 우리의 구실”이라고 말했다. 그런 취지라면 독립투자자문사(IFA)가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김 대표는 “독립자문사는 정말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엔 아직 없다. 판매사의 수익 배분이 금지된 만큼 자문보수를 높여야 하는데 그러면 결국 고객에게 부담이 돌아간다”며 씁쓸해했다. 플레인바닐라가 받는 자문수수료는 연간 4만원이다. 펀드온라인코리아의 박형주 과장은 “대부분의 자문사 수수료는 정률제다. 비슷한 자문서비스를 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의 수수료는 월간 1만~3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플레인바닐라의 수수료가 낮은 것은 고객 상담을 통화나 면담이 아닌 에스앤에스(SNS)를 통해 효율적으로 하는 덕분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요즘 고객들은 말보다는 텍스트를 좋아한다. 구체적인 수치와 평가기준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플레인바닐라의 영업은 체급에 걸맞지 않게 공격적이다. 단순히 출시된 펀드 중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포트폴리오를 설계해 이런 상품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운용사에 제안한다. 판매사 플랫폼과 협업도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펀드슈퍼마켓은 고객의 자문계약부터 펀드매매까지 원클릭으로 가능한 온라인 시스템을 제공했다. 삼성증권, 키움증권, 케이비(KB)증권, 엔에이치투자증권과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플레인바닐라는 주가연계채권(ELB) 등 손실이 막힌 구조의 상품 외에도 연금상품 자문에 역점을 두고 있다. 장기 분산투자 관점에서 중국, 러시아, 인도, 베트남으로 투자 지역을 넓혔다. 신흥국 펀드로 쏠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미국은 너무 많이 올랐고, 유럽은 저성장 기조라 뺐다”면서 “분기마다 분석 보고서를 내고 비중 조절을 한다”고 설명했다.
판매사들이 처음엔 조그만 자문사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젠 대등한 협상이 가능해져 사모상품의 경우 선취수수료 없이 가입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 이상인 사모펀드에 중점을 두면 소액투자자를 위한 자문을 하겠다는 애초 취지가 퇴색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7일 8억원의 자금을 모아 증자를 한다. 라이선스 제약이 없어지면 금액에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는 공모상품을 더 많이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