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하는 데 주요한 원인이 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 비율’ 논란은 현행 자본시장법의 허술하고 모순된 규정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합병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법적 형식논리에 기대기보다는 전체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균형있게 고려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2일 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안에 대한 삼일회계법인의 평가의견서를 보면,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글로비스의 합병가액은 기준시가, 모비스(분할부문)는 미래수익을 반영한 본질가치로 산정했다. 모비스도 상장사지만 분할부문만 떼내 주가를 산정하기가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합병비율 산정 때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면서 시장의 의심은 싹트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미래 수익가치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합병비율이 왜곡될 수 있다고 보고 자본시장법에 보완 장치를 뒀다. 유사한 업종의 상장사와 비교한 상대가치를 공시함으로써 투자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주당이익 등이 ‘100분의 30’ 범위에 있는 유사회사가 3곳 미만이면 공시를 안 해도 된다는 예외조항을 달았다. 모비스(분할부문)는 현대위아 등 유사 상장사들을 골라놓고도 예외조항을 근거로 아예 상대가치를 산출하지 않고 합병가액 산정에도 반영하지 않았다. 인수·합병 부서에서 일하는 한 증권사 임원은 “최근 3년간 상장사-비상장사 합병 보고서에서 상대가치를 공시한 사례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고시한 규정이 투자자 보호가 아닌 기업들의 눈가림으로 이용되는 꼴이다.
업계에서는 분할부문도 불투명한 수익가치가 아닌 시가로 산정할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한다. 분할부문을 먼저 상장해 시장의 평가를 받은 뒤 시가 대 시가로 붙여 합병비율을 산출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분할→상장→합병의 단계적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드러났듯, 시가를 통한 합병비율 산정에도 문제점은 적지 않다. 글로비스의 합병가액(15만4911원)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 발표 전날(3월27일)을 기점으로 거슬러 한달 전까지 평균 주가로 산정됐다. 그런데 이 기간 글로비스 주가가 10.53%나 오르는 바람에 합병비율이 글로비스 주주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됐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1.02% 상승에 그쳤고, 글로비스가 속한 운수창고업종 지수는 되레 0.61% 하락했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현대건설 등기이사 사임 공시(3월13일)를 전후로, 정의선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글로비스가 지배구조 개편의 중심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글로비스 주가가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병과 같은 이슈에 의해 주가가 단기에 출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합병가액 산출 기간인 1개월은 너무 짧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장일을 빼면 글로비스 주식의 실제 거래일은 19일밖에 안 된다. 합병 공시 전날 주가가 합병가를 결정하는 비중도 3분의 1 이상으로 너무 높게 돼 있다. 반면 주주가 회사에 주식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의 가격을 산정할 때는 2개월 동안의 주가를 고려하고, 공시 전날 주가를 별도로 반영하지 않도록 자본시장법에 다르게 규정됐다. 결과적으로 글로비스 매수청구가격(15만1156원)은 합병가액보다 낮아져 회사의 부담을 덜어줬다. 합병가액 계산 때 주식의 ‘종가’를 적용하도록 한 규정도 인위적인 시세조종에 취약한 구조다. 상장사 유상증자 때 신주 발행가액은 종가가 아닌 거래 평균가격으로 산정하도록 한 점에 비춰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5년 삼성물산 합병 논란 당시 삼성 쪽은 “합병비율이 주가를 따르는 건 법의 명령”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적법성’만큼이나 ‘적정성’이라는 상식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사회적인 현안을 두고 적법성만 따지기보다는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보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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