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금융위원회 감리위원장이 1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금융위에서 열린 제7차 감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공동설립한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보유한 지분을 살 수 있는 콜옵션을 행사한 뒤 주식을 되팔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따라 7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를 심의할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새 변수로 떠오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바이오가 지배력을 잃게 됐다며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를 변경한 근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바이오젠의 연례전략결정회의 녹취본을 들어보면, 바이오젠 경영진은 에피스 주식을 장기 보유하지 않고 합작 사업에서 철수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바이오젠 최고경영자인 미셸 보나토스는 회의에서 “에피스의 사업은 (바이오젠이 주력하는) 신경과학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젠은 매출의 3분의 2 이상이 신경계 질환 치료제에서 나온다. 보나토스는 향후 에피스 출구전략(지분 매각) 일정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콜옵션 행사 계획을 밝힌 바 있는 제프 카펠로 바이오젠 최고재무책임자도 “에피스 지분을 (5.4%에서) 50%까지 늘린 뒤 우리의 이익과 그들(삼성)의 이익을 전략적으로 고려해 계속 보유할지, 현금화할지를 지금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카펠로는 지분 매각과 관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성과의 관계를 궁금해하는데, 합자회사(에피스) 이슈는 (의약품) 개발과 제조, 유럽 시장의 상업적 권리로 이뤄져 있다”면서 “미국 시장은 막 내딛는 단계이지만 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로 콜옵션 지분을 판권과 연계해 거래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바이오젠은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의약품 복제약) 유럽 판권을 가지고 있다.
바이오젠의 연례회의가 끝난 뒤 바이오전문 매체인 <바이오센추리>는 “바이오젠이 신경과학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에피스를 떠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의 미즈호 증권도 “에피스 지분을 잠재적으로 매각하려는 협상은 바이오젠의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리포트를 냈다. 리서치업체 써치엠글로벌에 따르면 이 증권사는 지난 4월에도 “삼성그룹이 바이오젠의 에피스 지분 전부나 일부를 인수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는 소식이 맞다면 바이오젠 주가에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은 바 있다.
바이오젠은 그동안 에피스를 경영권 확보 대상이 아닌 연구개발 등 사업파트너 관계로 인식해왔다. 콜옵션 행사를 앞둔 이번에는 추가로 확보하게 될 지분을 팔아 주력 사업에 재투자하려는 의도를 비친 것으로 보인다. 김미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전량 행사해 장부가(2조4천억원)에 매각할 경우 행사금액(7천억원)을 뺀 1조7천억원 가량의 차익을 얻게 될 것”으로 추정했다.
삼성바이오는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져 지배력을 잃게 된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 회계처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았다. 하지만 바이오젠 경영진의 이번 발언을 보면, 절반의 지분을 확보해도 에피스에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는 엿보이지 않았다. 만약 바이오젠이 지분을 삼성에 되팔거나 다른 회사에 분할 매각할 경우 삼성바이오는 에피스를 다시 종속회사로 돌려 회계처리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김경률 회계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바이오젠이 지분을 되팔겠다는 것은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콜옵션 행사로 지배권을 잃게 된다는 삼성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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