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 주주총회에서 임원 보상 평가에 ‘다양성’ 지표를 넣자는 주주제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기준 가운데 하나인 사회책임투자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탓이다.
이번 주주제안은 사회책임투자회사인 ‘제빈 에셋 메니지먼트’가 구글이 사내 다양성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임원 평가에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제안했다. 지난해 인종·성차별 문제로 각종 소송이 이어졌던 구글 내부 문제를 반영한 제안이었다. 이달 구글이 공개한 임원 성별 비율을 보면, 남성 74.5% 여성 25.5%로 남성이 3배가량 많다. 인종별로는 백인이 53.1%로 과반이고, 아시아인 36.3%, 라틴 3.6%, 흑인 2.5% 순이다.
이들은 제안서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인텔·아이비엠(IBM) 등이 다양성 목표를 설정하고 임원 급여의 일부를 이 목표에 묶기 시작했다”며 “성·인종·민족 다양성과 환경 및 사회적 고려 사항 등이 장기적인 기업 전략에 어떻게 통합되는지 ‘지속 가능성’을 경영진 성과 측정에 통합할 수 있는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사내 다양성을 비롯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요소를 경영진 인센티브 제도에 포함하면, 기업의 평균 재정 수입이 높아지고 장기적인 주주가치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안건은 부결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도 “이미 관련 내용을 공개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알파벳 이사회 쪽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의 알파벳 지분 비율은 0.37%로 미미하지만, 가장 최근 공시 기준인 2016년 말 기준으로 따진 평가액으로는 1조1300억원 상당이다. 해외주식 투자종목 중 가장 큰 금액이다.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행사한 이유를 “이 회사가 각 이사 후보의 경험, 자격, 주주가치 기여 등에 대해 동종업계 대비 관련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공시했다.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6조(주주가치 감소를 초래하거나 기금의 이익에 반하는 안건은 반대한다)가 근거였다. 결국 다양성에 대한 ‘정보 공개’를 넘어선 ‘인센티브 연계’ 방안에 대해서는 ‘기금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 국민연금 관계자는 “공시 내용 이외에 추가로 밝힐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국민연금이 밝혀온 의결권 행사 원칙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 제고를 위하여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 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하여 의결권을 행사한다’(의결권 행사지침 4조의 2)는 사회책임투자 총론 격인 조항은 물론이고, ‘다양한 경력과 능력을 갖춘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안에 찬성한다’(해외주식 의결권 행사 세부기준 14)는 지침과도 맞지 않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이런 선택의 배경으로 소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무게를 뒀다. 윤승영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충분히 권고할만한 사안인데 해외 기업은 상대적으로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국내보다 떨어져,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기보다 대주주나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따라 수동적으로 흘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앞서 2월 애플 주총에서도 국민연금은 애플이 인권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는 안건에 같은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이 중장기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에 해외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힌만큼, 의결권 행사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023년 말까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15% 내외로 축소하고, 해외 주식 투자를 30% 내외까지 늘린다는 내용의 중기자산배분안을 의결했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해외 주식 비중은 연금 전체 자산의 17.4%(108조7천억원)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원칙에도 이에스지 조항이 들어가있지만, 실제 표결에 이를 기본철학으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며 “하반기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의결권 행사에 책임투자가 바탕이 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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