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0년 전에 발생한 키코(KIKO) 사태를 원점에서 조사하겠다고 밝혀,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안이 재조명받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9일 ‘금융감독 혁신과제’를 발표하며, “키코 사태의 공정한 분쟁처리를 위해 피해기업 상담 및 사실관계 등을 원점(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하고 필요하면 현장검사를 실시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25일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키코 공대위)를 통해 지난 5월 분쟁조정을 신청한 5개 기업의 분쟁조정국·검사국 합동 전담반을 꾸린 상태다.
키코는 환율이 정해진 범위 안에서 변동하면 미리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이 안정적일 땐 환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환율 등락폭이 커져서 상한선이나 하한선을 벗어나면 손해를 보게 된다. 2008년 키코에 가입한 수출 중소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피해를 입었다. 금감원이 2010년 조사한 피해 실태를 보면, 중소기업 738곳이 3조2274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일부 중소기업들은 은행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3년 대법원은 “키코 상품을 판매한 것은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다만 일부 사건에선 설명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은행 쪽에 불완전판매에 대해서 일부 배상 책임을 물었다.
조사 대상은 소송이나 분쟁신청을 하지 않았던 피해기업 5곳이다. 애초에 법인회생 등 때문에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키코 공대위가 피해 규모 등을 따져 우선 선정했다. 일부는 폐업한 상태다. 조붕구 키코 공대위 대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키코 사건도 재판 거래로 삼지 않았느냐”며 “팔지 않았어야 할 상품이었다는 걸 이번에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금감원 전담반은 조정을 신청한 5개 기업을 개별 방문해 면담 조사중이다. 금감원은 기업들의 자료와 면담 등을 바탕으로, 은행들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대조 및 사실확인 작업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추려진 사실 자료를 바탕으로 공식적인 분쟁조정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한다. 이후 위원회에서 피해보상 등을 포함한 조정결정을 내게 되고, 결정에 대해서 쌍방이 수락하지 않으면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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