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5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금융감독원, 금융연구원, 기업지배구조원, 금융협회 및 학계·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 제공.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을 20.76% 보유한 최대주주로, 회사 경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이다. 현행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에선 금융회사 최대주주 중 최다출자자 1명만을 자격 심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생명에 ‘사실상’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특수관계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심사 대상이 아니다. 금융위는 이 때문에 지난 3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특수관계인인 다른 최대주주들도 회사에 지배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어 심사 대상에 포함해 현행 지배구조법에서 발생하는 심사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며 개정안을 냈다.
11일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지난 6월22일 금융위가 이런 내용을 담아 제출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심의한 결과, 대주주 적격성 심사대상 확대에 대해 철회를 권고했다. 정부 제출 입법안은 규개위 심사를 통과해야 법제처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란, 금융사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주주의 출자능력·재무건전성·신인도 등을 심사하는 제도로, 경제 관련 범죄로 금고형 등을 받은 대주주는 의결권 행사 제한 등의 제재를 받는다.
정부의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보험·카드·증권사의 ‘최다출자자 1명’으로 규정된 대주주 적격성 심사대상을 ‘최대주주 전체’ 및 ‘기타 사실상 영향력 행사하는 주요주주’로 확대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삼성생명을 예로 들면, 현재는 이건희 회장만 심사 대상이지만, 개정안 기준으로는 이 회장의 특수관계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물산 등 법인까지도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물산의 삼성생명 지분은 각각 0.06%, 19.34%다.
금융위는 규개위에서 “현행 규정으로는 실질적 지배력 행사와 무관한 개인을 심사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외국법인의 경우에는 심사가 형해화되는 문제도 있다”고 개정안의 필요성을 밝혔다. 하지만 규개위는 “기업 경영에 실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심사대상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는 문제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규제 범위가 과도하게 넓고 규제에 따른 영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며 철회를 권고했다. 개정안이 금융기관 업권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고, 법 시행 2년이 지나지 않아 개선 여부를 판단하기 이르다는 지적도 규개위는 덧붙였다. 규개위는 또 사외이사 연임 때 외부평가를 의무화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형식적 운영 우려 등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철회 권고했다. 다만 대주주 심사 요건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을 포함하는 것은 규개위도 동의했다. 현재는 금융관련법, 조세범처벌법, 공정거래법 위반만 심사 요건에 포함돼 있다.
금융위는 규개위에 재심사를 요청하지 않고 철회 권고를 수용하기로 했다. 채이배·박선숙·천정배 의원 등이 정부안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정부안보다 심사대상을 더 넓게 적용해 제출된 입법안이 여럿이 계류돼 있어 국회에서 병합 심사를 하면서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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