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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카드 안 받습니다” 말해도 되는 세상이 오려나

등록 2018-08-26 18:16수정 2018-08-27 14:55

[카드 사용 20년]
뭔가가 잘못 됐다
점주들 수수료 신음하고
현금 내는 저소득층이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사는 형국

[의무수납제 20년]
카드결제 거절하면 불법
카드고객 차별해도 불법
이번엔 폐지될 분위기
카드업계도 “때가 됐다”
금융위TF 올해안에 결론
그래픽_김승미
그래픽_김승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지난 10년간 신용카드 수수료는 1년에 한번 꼴로 내려갔다. 올해 일반가맹점의 수수료 상한은 2.3%지만 2012년부터는 영세(연매출 3억원 이하)·중소(연매출 3~5억원) 가맹점을 지정해 이들의 수수료는 각각 0.8%, 1.3%로 더 낮아지기 어려운 수준까지 떨어졌다. 신용카드의 가장 큰 특징이 외상과 할부 결제인만큼 자금 조달 비용 등이 드는 ‘비싼’ 결제 시스템이지만, 소비자들은 포인트와 캐시백 등 혜택에 익숙해져 전체 민간소비의 신용카드 결제 비중은 이미 70%에 이른다. 가맹점이 ‘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차별하지 못한다’는 카드 의무수납제를 깨야, 카드사들이 오른쪽 주머니(가맹점)로 수수료를 받아서 왼쪽 주머니(소비자)로 과도한 할인 혜택을 주는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카드 의무수납제’란 신용카드 가맹점이 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규정을 가리킨다. 가맹점주들이 ‘카드 거부’와 ‘카드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1998년 당시 이런 조항이 나온 배경엔 세원 투명화라는 정부의 목표가 있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도 도입해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다. 결과적으로 신용카드는 많은 거래를 양성화해 자영업자의 세원 파악에 기여했고, 현재 잔고가 없어도 쉽게 돈을 미리 앞당겨 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 가맹점이 의무적으로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카드사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점유율을 늘려올 수도 있었다. 가맹점은 소비자들의 신용카드를 통한 ‘과소비’로 매출 증대 효과도 누렸다.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쓰면 쓸수록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늘자 이들의 ‘공생관계’가 깨지기 시작했다. 경기가 어려우면 자영업자 중심으로 카드수수료 인하부터 요구하기 시작했다. 연말이나 명절을 앞두면 정치인들은 ‘카드수수료 인하’를 외치고, 금융당국 주도로 수수료를 낮춰왔다. 2008년 이후 의무수납제 조항을 폐지하거나 1만원 이하의 소액결제에 한해 거부할 수 있다는 등의 법안이 여러 차례 국회에 발의됐지만, 그때마다 소비자들의 불편이 부각되면서 논의는 흐지부지됐고 정부 주도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는 계속 이어져 왔다.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엔 의무수납제가 폐지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10년간 유지해온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지난 4월 출범한 ‘카드수수료 관계기관 티에프’(TF)에서 논의해 하반기 중에 카드수수료 재산정과 함께 의무수납제 폐지 여부 등을 담은 카드수수료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카드사에만 자영업자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는 일을 맡기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카드 사용으로 편익을 보는 사용자와 세금을 더 거두는 정부 등이 다 같이 부담을 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드업계도 그간 의무수납제를 폐지하면 신용카드 이용대금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지만, 현재는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보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신용카드 결제비중이 50% 정도만 되더라도 가맹점주들에게도 매출 증대에 효과가 있었는데, 비율이 너무 높아지다(약 70%) 보니 부담이 커진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근재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도 “수수료 0%를 강조하는 제로페이 등은 노인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또 확산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의무수납제가 당장 폐지되면 소상공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무수납제 없애면]
점주들 “이 카드는 안받아요”
수수료 협상력 상승
고객이 현금으로 결제할 때
깎아줘도 합법

[걱정도 솔솔]
매출 떨어지면 어쩌나
정부가 하던 수수료 협상
영세한 개인이 하면, 잘 될까?

현금과 신용카드의 혜택 차이가 소비자들끼리의 ‘역진적 차별’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도 의무수납제 폐지 논리를 지지한다. 한국은행의 ‘2017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를 보면, 저소득층과 고령층일수록 신용카드 결제비중이 떨어지고 현금 결제 비중이 올라간다. 돈 없는 이들이 같은 물건값을 더 비싸게 주고 사는 셈이다. 카드 이용자가 할인받는 가격은 알게 모르게 저소득층인 현금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가맹점들은 의무수납제가 폐지되면, 이 점을 이용해 실제 소비자들의 카드 결제를 거부하기보다는 카드사들에 대한 수수료 협상력을 높이는 것을 기대한다. 고객이 현금을 지불할 때 수수료만큼 물건값을 깎아주는 ‘가격 차별’을 시행하면, 수수료가 높을수록 소비자들이 현금을 내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적으로 카드를 받지 않으면 매출도 떨어지기 때문에 개별 영세 가맹점은 오히려 대형 카드사들에 대한 협상력이 정부 주도로 수수료가 결정될 때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오스트레일리아도 의무수납제를 폐지하면서 영세 가맹점의 협상력이 떨어지게 나타났었다”며 “마치 노조처럼 영세 가맹점들끼리 뭉쳐서 수수료를 협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의무수납제 폐지로 가맹점들의 세금 회피 유인이 커지는 점에 대해선 현금영수증 의무화 조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신용카드의 혜택이 줄어도 할부와 외상이 가능하다는 강점 때문에 다른 결제수단에 대한 부가 혜택과 신용카드에 대한 불이익이 동시에 따라와야 전반적인 ‘사회적 비용’이 낮은 방향으로 지급결제 구조가 바뀐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주요 국가에선 이미 신용 리스크 관리 비용 등이 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큰 지급수단인 신용카드 이용 비중을 감축하려고 가맹점이 소비자에게 추가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순히 가맹점주 부담 완화가 아닌, 국내 소매 지급결제시장을 보다 편리하고 안정적이며 비용부담이 적은 쪽으로 유인한다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며 “비용구조가 큰 신용카드 비중을 낮추기 위해 현금이나 체크카드·제로페이 등의 소득공제는 확대하고, 기존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폐지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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