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투자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의안에 반대하는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최종 부결로 이어지는 사례는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투자기업의 잘못된 경영 행태와 주주가치 훼손 행위를 바로잡는 데 여전히 소극적인 탓인데,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내놓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관련 정책자료집’을 보면, 2018년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투자한 기업 282곳 가운데 올해 주총에서 반대의결권 대상이 됐던 기업은 162곳(57.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6년엔 국민연금이 266개 기업 중 67곳(25.2%), 지난해엔 276곳 가운데 99곳(35.9%)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했다.
반대의결권 행사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로 안건 부결에 성공한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2016년 국민연금의 반대의결권 대상이 된 기업 67곳 가운데 실제 안건이 부결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2017년엔 99개 기업 중 대한해운·효성·만도·케이비(KB)금융지주 등 4개(4.0%), 올해도 162곳 중 한국타이어·현대엘리베이터·케이비(KB)금융지주 등 3곳(1.9%)에서만 국민연금이 행사한 반대의결권이 최종 안건 부결로 이어졌다. 2016년 이후 3년 연속 반대의결권 대상이 된 기업도 16곳에 달했지만, 국민연금이 안건 부결에 성공한 기업은 효성 한 곳뿐이었다.
주총 안건 부결을 위해선 최소 25% 이상의 의결권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현재 의결권 행사 시스템으로는 안건 부결을 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 신동근 의원은 “국민연금은 의결권 지침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대 의견을 서면으로 주총에 제출하는 소극적인 활동에 그치고 있다”며 “상당수 기업이 해마다 단골로 반대의결권 대상이 되고 있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이들 기업의 잘못된 경영 관행 개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 원칙)를 도입한 바 있다. 신 의원은 “지금까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행태를 봤을 땐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에도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며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방해하는 자본시장법상 ‘5%룰’과 ‘10%룰’을 국민연금에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국민연금이 내부 규정을 정해 2년 또는 3년 연속 반대의결권 대상이 되는 기업에 대해선 투자를 부분 또는 완전 철회하는 조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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