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의 이란인 고객 계좌해지 조처에 대해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건으로 조사중인 것으로 8일 확인됐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조처에 따른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우려를 이유로 은행이 제재 범위를 넘어서 이란 고객에 대해 일괄적인 계좌해지를 요청한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달 5일 하나은행의 이란인 계좌해지와 관련해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이라는 진정이 접수돼 현재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지난 9월 말께부터 이란인 고객 수십명에게 10월12일까지 계좌해지를 해달라고 우편 등으로 요청했다. 같은 달 31일을 기점으로 해지하지 않은 고객들의 돈은 인출만 가능하고 송금 등 기타 거래는 모두 정지됐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출신 국가를 이유로 용역 공급·이용과 관련해 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인권위에 진정을 낸 국내 거주 이란인 알리 카리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국의 은행들이 미국의 제재 조처를 우려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출처가 명확한 국내거래조차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7년째 한국에 살면서 현재 국내 박사과정을 밟는 동시에 산업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그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직장에 다니는데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 것 같다”며 “미국에서조차 급여 출처 등이 명확한 이란인이 계좌해지를 요구받은 경우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나은행 쪽은 이란인 고객들에게 계좌해지를 요청하면서 “이란 국적 손님과 거래하는 원화·외화 예금 거래도 미국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미국 법무법인의 의견을 근거로 이란 국적 손님의 예금거래를 해지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다른 시중은행 가운데 이란인 고객의 국내거래 자체를 제한하며 계좌해지를 요청한 곳은 아직 없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개별 은행의 판단이기 때문에 당국이 지도·감독할 내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하나은행을 이용하던 고객은 다른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며 “리스크의 최종 판단 권한은 은행 쪽에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미국의 대이란 제재 예외국에 한국이 포함되면서 국내 은행이 이란과의 무역 결제처리를 재개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우리은행과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2곳이 이란 원화결제계좌를 운영하고 있다. 이란 관련 금융거래를 미국이 집중 모니터링하게 될 은행에도 하나은행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란 전문가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금 출처와 신원 확인 등을 하는 다른 은행들과 달리 하나은행이 이란인 고객 전원에 대한 계좌해지를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행위”라고 비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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