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자회사 간의 합병 과정에서 대주주가 자의적으로 합병가액을 낮게 산정해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소액주주들의 주장이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최종 인정됐다. 삼성전자가 비상장사인 합병 회사의 주식을 전·현직 임직원들로부터 미리 낮은 가격에 대거 사들인 뒤 이를 시장에서 거래된 정상 가격인 것처럼 꾸며 주식매수가액으로 제시했는데, 법원이 이를 공정한 가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13년 1월 삼성전자 자회사인 반도체 공정업체 세메스에 합병된 또 다른 자회사 세크론 소액주주들이 사전에 세메스가 공시한 주식매수가격(주당 8만5천원)이 불합리하다며 법원에 낸 주식매수가액결정 신청에 대해 “주당 12만4490원으로 산정하라”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수익가치 산정에 법리를 오해한 측면이 있다”고 재산정 이유를 설명했다. 2심에서 판결한 가격보다 더 비싸게 주식매수가액을 산정하라는 취지다. 관련 규정을 토대로 고법이 매수가를 다시 산정하면 주당 16만원 안팎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회사 쪽은 소송을 낸 소액주주들에게 보유 주식 1만5520주에 대한 매매대금 약 25억원(주당 16만원 결정 가정)과 소송이 진행된 7년 동안 제때 지급하지 않은 지연이자(연 6%)까지 물어줘야 한다.
사건의 발단은 201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10일부터 10월15일까지 삼성전자는 세크론 주식 11만9730주(총발행주식의 14.8%)를 1주당 8만5천원에 105명의 주주로부터 사들였다. 주식을 판 이들 중 세크론 전·현직 임직원이 94명이고 일반주주는 11명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세크론 주식을 매입한 뒤 3일이 지난 10월18일 세메스는 이사회를 열어 세크론과 또 다른 반도체 자회사 지이에스를 합병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삼성전자는 세메스의 합병 대상 자회사 가운데 세크론에 대해선 장외거래된 가격이 있다는 이유로 별도의 가치평가 없이 8만5천원을 시가로 반영했다. 반면 삼성전자가 100% 지분을 보유한 지이에스에 대해선 수익·자산가치를 토대로 가치평가를 했다. 이에 세크론 소액주주 35명은 이듬해 3월 “주당 8만5천원은 합리적인 시가가 아니라 세크론의 대주주인 삼성전자에 의해 정해진 가격”이라며 법원에 주식매수가액을 결정해달라고 신청했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합병을 코앞에 두고 눈에 보이는 ‘무리수’를 둔 것은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싸게 사들이고 합병비율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당시 세크론의 소액주주 주식 수는 4만3200주였다. 2심 결정금액인 12만4490원과 8만5천원의 차액(3만9490원)을 기준으로 하면, 삼성전자는 이들 소액주주로부터 정상 가격보다 17억596만8천원 적은 금액으로 주식을 매입하려 한 셈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비상장주식 가치를 산정할 정상적인 거래 사례가 있다면 해당 거래 가격을 주식가치로 산정할 수 있도록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 규정을 활용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합병에 앞서 개별 주주들에게 비밀약정서까지 받아 일괄적으로 8만5천원에 거래한 것과 관련해 1심 재판부가 “삼성전자가 자회사들의 합병을 진행하면서 거래 사례를 통해 합병되는 회사들의 주식 시가를 만들려고 하였다는 의심도 든다”고 할 정도로 재판 초기부터 정상적인 거래로 인정받지 못했다.
세크론처럼 정상적인 거래 가격이 없는 경우엔 통상 기업의 자산·수익가치를 토대로 주식가치를 산정한다. 1심 재판 과정에선 반도체 업체에 중요한 특허권 등 무형자산에 대한 세크론 쪽의 평가자료가 없어 자산가치도 제외하고, 2010~2012년 3년의 수익만 가중평균했는데도, 주식가치를 17만7358원으로 산정했다. 2심에선 특허권 평가도 반영해 자산·수익가치를 함께 놓고 가격을 따졌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더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1심과 달리 수익가치를 보는 기간을 수익이 높았던 최근연도를 빼고 2009~2011년 3개년으로 잡은 탓에 설비투자가 많아 적자를 본 2009년 실적이 포함돼 12만4490원으로 산정 가격이 내려갔다. 대법원 결정은 1심대로 2010~2012년의 수익가치를 반영하라는 주문이어서, 이를 토대로 재산정하면 2심보다 오른 16만원 안팎으로 정해질 전망이다.
소액주주들에게는 길지만 가치 있는 싸움이었다. 소액주주 중 한명인 채성균(48)씨는 “일반적인 법리 안에서 기업이 자신들에게 좀더 유리하게 산정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 경우는 (세크론을) 평가조차 하지 않고 조작에 가까운 시가를 정해 부당하다고 생각해 소송을 진행했다”며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대법원에서 공명정대한 판결을 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송을 진행한 법무법인 한결의 김광중 변호사는 “소액주주 지분비율이 높은 회사일수록 주식가치를 부당한 방법으로 낮게 평가해 주주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잦은데, 이번 대법원 결정은 그런 문제점을 바로잡은 선례가 돼 향후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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