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직장인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탑골 공원 노인들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국민연금 연 5.1%, 퇴직연금 연 3.1%, 개인연금 연 3.3%.
국민의 노후자금이 될 3대 연금의 2011~2017년 연평균 수익률입니다. 국민연금이 560조원, 퇴직연금이 168조원, 개인연금이 130조원입니다. 이밖에 공무원·군인·교원연금 등이 따로 있지만, 3대 연금만 해도 858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돈입니다. 이 돈을 잘 굴려야 국민 노후가 여유로워지는데, 이 돈주머니가 잘 불어나고 있는 게 맞을까요?
정부는 노후자금 관리를 위해 공적·사적 연금 제도를 만들고, 세 개의 주머니에 나눠서 보관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세 개의 주머니가 불어나는 속도가 상당히 다릅니다. 연평균 수익률은 공적보험인 국민연금은 5%대, 사적보험인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3%대로 거의 2%포인트 정도 차이가 납니다. 이는 작은 차이가 아닙니다. 장기가입 상품의 특성상 2%포인트 정도의 수익률 격차가 유지될 경우 수십년 뒤 노후자금 규모가 크게 달라집니다. 개인연금 적립금은 2017년 말 130조원에 이르렀는데, 이를 20년간 연 5.1% 수익률로 굴리면 352조원이 될 텐데 연 3.3%로 굴리면 249조원으로 확 줄어듭니다. 퇴직연금 역시 2017년 말 적립금이 168조원인데, 이를 20년간 연 5.1% 수익률로 굴리면 454조원이 되는데 연 3.1%로 굴리면 309조원이 됩니다. 수익률이 낮으면 같은 돈을 굴려도 20년 뒤 거의 30%나 적은 돈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사실 수익률엔 위험자산에 얼마나 투자하느냐 하는 자산배분 문제가 크게 작용합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었던 2017년엔 국민연금 수익률은 7.3%, 개인연금은 3.7%, 퇴직연금은 1.9%로 아주 큰 격차가 났습니다. 위험도가 큰 주식시장 등에 얼마나 투자했느냐의 문제일 공산이 큽니다. 국민연금은 2017년 주식과 대체 투자 비중이 49%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같은해 퇴직연금은 원리금 보장형 투자가 88.1%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물론 고위험-고수익 주식시장에 투자를 많이 한 게 무조건 잘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수백조원에서 적어도 백조원 이상의 노후자금 돈주머니가 있는데, 관리 수준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게 논란거리란 얘기입니다. 외국 사적연금에 견줄 경우 우리 사적연금은 수익률이 3%포인트나 크게 낮습니다.
그나마 56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 돈주머니엔 300명 가까운 운용전문 인력이 붙어서 수익률을 관리합니다. 사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도 각각 168조원과 130조원 규모로 돈주머니 크기가 만만찮은데, 제각각 수천개 금융회사 상품들에 쪼개져서 흩어져 관리되는 게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결과는 알다시피 국민연금보다 크게 낮은 수익률이고, 사실상 방치에 가까운 운용 행태도 적지 않습니다.
퇴직연금의 경우 사용자인 회사나 직원 개인이 각각 투자운용을 책임지는 두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그런데 둘 다 금융회사가 별 운용인력을 붙일 일이 없는 원금보장형 상품에 방치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사용자인 회사는 노후자금 손실 위험을 책임지기 꺼리는 데다, 많은 회사는 투자운용 관리를 할 만한 인력을 둘 여력이 없습니다. 개인인 직원들 역시 투자운용에 들일 금융 지식도 시간도 태부족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개인연금저축의 경우 개인이 금융상품에 가입해 운용 수수료를 꼬박꼬박 지불했는데도 은행예금보다 좀 높고 저축은행 적금보다는 더 낮은 수익률을 내거나, 일부는 은행예금만도 못한 수익률을 내는 현실이 금융감독원 등의 실태조사를 통해 드러나곤 합니다. 가입자들이 원금보장에 치중하는 데다, 금융회사의 저조한 운용 수익률을 정부의 높은 세제혜택이 가려주는 탓이기도 합니다.
고령사회 진전과 함께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돈주머니는 계속 불어날 것입니다. 국민연금 수익률도 외국 연기금에 견줘 낮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퇴직·개인연금 같은 사적연금은 나라 안팎에 견줘 수익률이 지나치게 낮으니 불만도 함께 커질 터입니다.
최근 국회 안팎에선 이런 사적연금의 수익률을 제고할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내 퇴직·개인연금, 왜 수익률이 낮을까’ 토론회에선 사적연금 운용 제도 개선에 대한 여러 갈래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퇴직연금의 경우 일반 회사나 직원 개개인은 투자운용 능력이 일천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돈들을 한 주머니에 모아서 퇴직연금 기금 형태로 덩치를 키운 뒤 국민연금처럼 전문 운용인력을 붙여 관리하자는 법안이 나와 있습니다. 이를 통해 퇴직금 기금 운용을 맡아줄 수탁법인(기금 운용법인)들을 키우자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라고 하는데, 지난해 정부 입법으로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과 영세 사업장에 대한 정부 지원을 전제로 발의된 중소기업연합형퇴직연금기금 설립 법안 등이 이런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또 ‘디폴트 옵션’ 제도도 논의 중입니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에 대한 운용지시를 따로 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는 현실을 반영해, 운용회사가 가입자의 성향에 맞게 알아서 적당한 상품에 투자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여기엔 여러 논란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노년 삶의 보루인 노후자금 손실 위험과 책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 큰돈을 맡은 수탁법인의 운용책임을 어떻게 감시할 것이냐, 영리 수탁법인을 허용할 것이냐, 디폴트 옵션이 금융회사의 이해와 가입자의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느냐…. 여러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자본시장의 금융회사들은 새로운 먹을거리가 될 연금제도 개편을 원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세제 혜택 뒤에 숨어 앉아서 수수료 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보니 금융회사들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습니다.
김병욱 의원은 말합니다. “연금 문제를 투자와 운용이란 개념으로 접근할 시기가 됐습니다. 이를 위해선 법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본시장의 종사자나 금융회사들이 어느 수준에 와 있고, 이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어떤지 자성하고 불완전 판매 등을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국민 신뢰를 얻어나가야 국민의 노후 재테크에 도움을 주면서 자본시장에 수백조원이 들어와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