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정원 전 청와대 행정관의 메리츠금융 상무 선임을 계기로 ‘금융사 낙하산 임원’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관행을 두고 법을 개정해 이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올해 안 관련 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목표로 삼고 있어, 추후 입법 논의 과정이 주목받고 있다.
17일 현재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는 금융사 임원의 적격성(자격요건)을 개정하는 내용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지배구조법) 3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임원 결격 사유에 ‘채용비리’ 전력을 추가한 정도고, 지난해 9월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은 기존 법 5조에서 규정하는 ‘임원의 자격요건’으로 최고경영자(대표이사 및 대표집행임원)에 금융 전문성과 업무경험 등을 요구하는 신설 조항을 추가했다.
앞서 2016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임원 전체의 자격요건을 강화한 조항이 담겨 있다. 현행 지배구조법에선 이사, 감사, 집행임원(상법상 집행임원을 둔 경우), 업무집행책임자(이사가 아닌 임원으로 부행장·전무·상무 등)를 ‘임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 의원 안에선 이들 임원이 금융기관 2년 이상 재직, 금융 관련 석사 학위 이상으로 연구원이나 교수로 5년 이상 종사, 변호사 또는 회계사로 5년 이상 종사, 이밖에 금융·법률·회계 등 전문지식이나 실무 경험이 풍부한 사람 등의 요건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지배구조법의 금융기관 임원 자격요건은, 범죄·행정제재 경력자, 채무불이행·파산 등 신용불량자, 부실금융회사 유관자, 심신미약자 등은 금융사 임원이 될 수 없다는 소극적인 결격 사유만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 전문성이나 경력이 없는 낙하산 임원 취임은 막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 더해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 자문기구격인 ‘금융회사 내부통제 혁신 태스크포스’도 정부 개정안에서 전무·상무 등 업무집행책임자까지 적극적 요건을 적용하는 수정안을 제안했다. 대신 정보통신기술(ICT) 업무 등 별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리는 시행령으로 정해 금융 전문성 등을 요구하지 않도록 했다. 티에프를 이끈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권 낙하산뿐만 아니라 비금융지주의 제조업 계열사에서 종사하던 임원이 하루아침에 금융 계열사로 옮기는 일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인 사례도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럽건전성감독지침에 따라 주요 금융기관 임원 후보자에 대한 경험, 평판, 이해상충 가능성 등을 금융당국이 심사하도록 한다.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주요 임원 선임에 앞서 후보자를 인터뷰하기도 하는 등 당국이 적극적으로 자격요건을 판단하고 있다. 이밖에 호주·홍콩·싱가포르 등도 중요 업무수행자에 이와 비슷한 수준의 자격요건을 적용하고 있다.
정부는 적극적 요건 대상 확대에 “당국이 판단하기 어렵다”며 부정적이다. ‘관치 논란’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사 임원이 금융뿐만 아니라 법률·회계·홍보 전문가 등 다양할 수 있기에 당국에서 적극적 요건까지 규정하긴 어렵다”며 “회사에 필요한 임원은 회사 이사회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개정안에 이사회 구성을 ‘총체적으로 금융사 경영에 적합한 전문성과 자질’(집합적 정합성)을 갖추도록 담았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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