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의 ‘인내심’이 다한 것일까? 시장 달래기에 나선 것일까? 유난히 인내심을 강조하며 금리 인하와 거리를 둬온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마침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고 시장은 화답했다.
파월 의장은 4일(현지시각) 시카고에서 열린 통화정책 컨퍼런스 연설에서 “무역분쟁이 미국 경제전망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경기확장 국면이 유지되도록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금리를 인하할 경우 금융시장 과열을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며 확대해석은 경계했다.
파월 의장의 이러한 태도 변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물가가 지속되는 탓으로 보고 있다. 연준은 현재의 고용 상황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지만 목표치인 연 2%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물가를 걱정하고 있다. 경기가 좋아도 물가 상승률이 계속 낮을 경우 생산과 소비, 고용으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 구도가 삐끗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은 ‘파월 풋’의 등장에 환호했다. 하락장에서 손실을 회피하는 효과가 있는 ‘풋옵션’에 빗대, 파월 의장이 증시의 구원투수로 등판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있다.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고비마다 금리인하로 증시를 부양해 ‘그린스펀 풋’이란 애칭을 얻었다. 이날 뉴욕증시는 다우지수가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높은 상승 폭을 기록하는 등 2%대 급반등으로 마감했다.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누그러지면서 미국 국채금리는 반등(채권가격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올해 연준이 2차례 정도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점치고 있다. 연방기금 금리선물 시장에 반영된 연준의 올해 2차례 이상 금리인하 확률은 현재 82.5%에 달한다. 첫 금리 인하는 9월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이뤄질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금리를 둘러싼 힘겨루기의 승자는 연준도 시장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보호무역으로 인한 경제와 금융시장의 타격을 연준의 통화정책 완화 효과로 상쇄해 무역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해왔다.
안팎의 여건은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지를 점점 넓혀주고 있다. 때마침 오스트레일리아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로 인하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중앙은행(RBA)은 4일 성장 둔화와 저물가를 이유로 2년 10개월만에 기준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내렸다. 우리나라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0.4%로 0.1%포인트 더 낮춰졌고 소비자물가도 5개월 연속 0%대 상승세가 이어졌다. 금융시장도 점차 안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4월 경상수지가 7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식에도 원화 가치는 되레 강세를 보였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4.2원 내린 1178.6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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