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보험사의 콜센터 도급 직원이 회사로부터 민원인 갑질에 보호받지 못했다며 금융감독원에 진정을 냈는데, 금감원이 관련 서류를 되레 보험사에 넘겨 해당 직원이 정직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6월 금융권에서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시행됐지만, 정작 필요한 이들이 금융당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절차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9일 <한겨레> 취재 결과, 한 손해보험사가 콜센터 업무를 위탁한 도급업체에서 일하는 ㄱ씨는 지난해 2월 한 민원인으로부터 걸려온 사고 접수 전화를 응대했다. 민원인이 ㄱ씨의 말투와 태도 등을 문제 삼으며 사과를 요구했다. ㄱ씨는 현장관리인에게 전화를 넘기며 끊고 싶다는 등의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관리인은 고객에게 사과할 것을 지시했다. 이와 관련 도급사 쪽은 “녹취를 들어본 결과, 악성 민원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지만, ㄱ씨는 “이미 보험사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해 12월 ㄱ씨는 금감원에 “회사로부터 적절한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고 불이익을 받았다”며 “(원청인) 보험사에 대한 처분을 요구한다”는 내용으로 민원을 넣었다. 보험업법 85조의4는 보험사가 고객 응대 직원을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 폭행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직원이 요청할 경우 고객으로부터 분리 및 업무담당자 교체, 직원에 대한 치료 및 상담 지원 등을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은 ㄱ씨가 제기한 민원을 ‘소관외 업무’라며 해당 보험사에 이첩했다. ㄱ씨가 혹시나 민원 관련 증빙이 될까 싶어 민원인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의 정보가 담긴 모니터 화면을 촬영해 제출한 사진도 함께 넘어갔다. 보험사는 ‘고객정보 유출’을 도급사에 문제 삼았다. ㄱ씨는 지난 5월 회사 징계위에 회부돼 정직 한달 처분을 받았다. 도급사 관계자는 “(ㄱ씨에 대한) 징계 사유는 고객정보 유출 그 자체가 아니라, 해당 사진 삭제를 요구하고 확인서를 요청했는데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징계를 받은 ㄱ씨는 지난 5월 “금감원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부작위에 대한 행정심판을 제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금감원은 중앙행정심판위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청구인의 민원은 보험회사로부터 사고접수를 위탁받은 사업체 직원의 소속회사에 대한 불만과 관련된 내용으로 금융회사에서 직접 처리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돼 민원을 금융사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ㄱ씨는 “분명히 보험업법에 나와있는 조항인데도 금감원이 ‘소관외 업무’라고 한 것도 문제지만, 민원을 고용노동부가 아닌 보험사에 넘겨 결국 정직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사실 여부를 채 따져보지도 않고 민원 내용을 보험사에 곧장 이첩한 것은 사실상 고객응대 보호 문제와 관련된 민원을 접수받을 만한 창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 분쟁조정은 금융사와 금융소비자 사이의 분쟁을 다루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고, 다룬다면 검사 분야에서 다뤄야 한다”면서도 “일방적인 민원 한건으로 검사에 곧장 나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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