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채용비리 피해자 손해배상 관련 2심 재판에서도 채용비리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0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항소가 아니다”라고 한 답변과 정반대로 금감원이 소송을 대응한 것이다. 게다가 금감원이 이같은 논리를 펴자, 채용비리로 부정채용 혐의를 받은 뒤 근로계약이 취소된 직원이 되레 금감원을 상대로 복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서울고법 민사36부(재판장 황병하)가 지난 10일 2016년도 공채 채용비리 피해자 ㅇ씨에게 8천만원을 배상하라는 1심을 유지하고 항소를 기각한 판결문을 보면, 금감원은 재판 과정에서 “채용절차는 채용의 자유 및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진행됐다”며 “위법성이나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피해자가 최종합격하게 되는 것이 아니어서 상당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객관성을 문제 삼은 ‘세평 조회’도 “객관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윤 원장이 국정감사 당시 “(금감원) 출연금의 효과적인 사용을 관리할 책임이 있어서 항소를 한다”며 “문제의 본질에 대한 항소가 아니다”라고 한 것과 배치되는 것은 물론, 금감원이 1심 판결 이후 탈락자들에 대한 구제 방침을 밝히고 올해 초 채용한 것과도 어긋난다. 금감원의 주장대로라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탈락자들을 채용한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배상금을 낮추려고 진행한 재판이지만 논리가 서려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해명했다.
2016년도 2차 면접결과 3등이었고 학력 허위기재도 채용 과정에서 확인됐지만 1·2등을 제치고 최종합격한 ㅂ씨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1심 판결 이후에서야 허위기재를 문제 삼아 근로계약을 취소했다. 이에 ㅂ씨는 금감원이 재판에서 “채용이 정당했다”고 주장한 것을 근거로 삼아 도리어 근로계약 취소를 무효화해달라는 내용으로 금감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ㅇ씨를 변호하는 법무법인 덕수의 정민영 변호사는 “ㅂ씨 쪽에서 우리 쪽에 금감원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문서송부촉탁을 청구했다”며 “금감원이 개별 소송에서 그때그때 입장 없이 대응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금감원 노동조합 관계자도 “1심 판결 이후 2심에 돌입하면서 다시 원점에서 다투게 될까봐 항소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경영진에 전달했는데, 결국 앞뒤가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ㅂ씨 소송건은 학력 허위기재 문제로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