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에는 장사없다’는 증시 격언이 있다. 하물며 ‘약골’은 조그마한 외부 변수에도 휘청거리기 쉽다.
31일 코스피는 외국인의 500억원에 못 미치는 순매도에도 힘없이 흘러내려 0.69%(14.13) 하락한 2024.55로 장을 마쳤다. 반면 코스닥 시장은 오후 들어 외국인이 287억원 순매수로 돌아서자 급락하던 지수가 0.73%(4.54) 반등해 630.18로 마감했다.
올 들어 세계 주식시장에서 한국증시 수익률이 최하위권을 맴도는 것은 기업실적 악화 외에도 시장을 떠받치는 자금이 이탈하면서 체력이 허약해진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집계를 보면, 국내증시 결제(거래)금액은 급감한 반면 국내투자자의 국외주식 투자규모는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주식 거래금액은 2017년 상반기 373조원에서 올 상반기 302조원으로 2년 새 19%(71조원) 감소했다. 반면 외화주식 결제금액은 같은 기간 93억달러에서 180억7천만달러로 94%(87억7천만달러) 급증했다. 국내 증시 상승세는 지난해 초부터 꺾였지만 미국 증시가 올해 들어서도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자 국내 투자자들 상당수가 국외투자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올 상반기에 국내 투자자는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탈환한 마이크로소프트와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 주식을 각각 6900만달러, 3900만달러 순매수했다. 지난해 가장 많이 사들였던 아마존과 애플은 순매도해 이익을 실현하는 발 빠른 매매를 보여주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의 증시 실탄인 국내 주식형펀드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원금)은 지난해말 64조3310억원에서 29일 현재 60조3330억원으로 6.2% 감소했다. 반면 채권형펀드는 같은 기간 101조7610억원에서 121조3900억원으로 19.3% 급증했다. 금리가 내리면 투자자금은 이자수익이 줄어드는 채권형에서 증시 부양효과가 기대되는 주식형으로 유입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에 자금이 거꾸로 이동한 것은 투자자들이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에 베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향후 금리가 더 내려가면 채권가격이 올라 채권형펀드의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던 국외 주식형펀드는 올해 들어 설정액이 감소했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올해에만 평균 20%의 수익이 났기 때문에 환매 요청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자금은 빠져나갔지만 지수 상승으로 국외 주식형펀드의 순자산(21조3050억원)은 되레 8.5% 불어났다.
주식매수 대기자금 성격인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해 1월말 30조원대에서 지금은 24조원대에 정체돼있다. 반면 주가가 급락할 때 투매의 요인이 되는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0조원을 넘나들고 있다. 이렇듯 수급이 꼬인 탓에 지난해 5월 9조원을 넘어섰던 코스피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현재 4조원대로 급감했다. 국내 증시가 외국인만 바라보는 ‘천수답’이 된 이유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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