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현금더미를 쌓아놓고 주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헤지펀드의 대부 레이 달리오는 “현금은 쓰레기”라면서도 정작 투자방식은 버핏의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정보업체 마켓워치는 16일(현지시각) “버핏에게 2019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버핏 회장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의 주가는 지난 한해 10.9% 상승에 그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상승률 28.9%에 크게 못미쳤다. 버크셔 시가총액의 15%에 달하는 금액을 쏟아부은 애플의 주가가 지난 한해 86.2% 급등한 점에 비추면 의외의 성적표다. 웰스파고 등 다수 투자 기업들의 실적이 저조했던 탓이다. 특히 지분 27%를 보유한 식품회사 크래프트하인즈의 주가는 신용등급 하향까지 겹쳐 급락했다.
월가에서는 버크셔의 투자규모가 너무 커져 투자에 적합한 회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본다. 버핏이 좋아하는 저평가된 회사가 있어도 투자하기에는 덩치가 작고, 규모가 큰 회사는 고평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버핏이 올해 90살이 되는 고령인 점도 버크셔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파악한다. 40년 지기 찰리 멍거 부회장도 연초에 96번째 생일을 맞았다.
반면 빌 게이츠는 “사람들은 1년의 투자성과는 과대평가하지만 10년간 성과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50년이 넘는 기간 버크셔는 연평균 18.8%의 수익률을 올렸다. 같은 기간 지수 상승률은 평균 9.7%였다. 버크셔는 닷컴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1999년에도 시장 수익률보다 20.5%포인트나 낮은 최악의 성과를 냈다. 버핏이 가치투자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당시 인수했던 재보험사(제너럴 리)도 손실을 냈다. 이 때도 70살이 다 된 버핏이 기술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힐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2000년 3월에 바닥을 찍은 버크셔 주가는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급등하기 시작했다.
구루포커스닷컴 자료를 보면, 버크셔가 지난 14일 공개한 2019년 4분기 주식 포트폴리오는 52개 종목으로 짜여있다. 43.3%가 금융주이며, 기술주 비중은 31%, 경기방어 소비재는 14.3%로 나타났다. 보유 상위 5개 기업은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 코카콜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웰스파고 차례다. 식료품 체인점 크로거와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젠 등을 신규 매수했다. 반면 애플과 금융주 비중은 축소했다.
현재 버크셔의 현금 보유 규모는 1220억 달러에 달한다. 버핏이 시장 상황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반면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를 이끄는 레이 달리오는 지난달 다보스포럼 인터뷰에서 “현금은 쓰레기”라며 적극적인 투자를 권유했다. ‘금 보유’ 문제로 버핏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던 달리오는 포트폴리오 구성에서는 금융주 비중을 늘리며 ‘버핏 따라하기’에 나섰다. 브리지워터의 지난해 4분기 주식 포트폴리오는 33개 종목으로 구성됐다. 상장지수펀드(ETF)의 비중이 70%를 넘고 금융주는 6.7%로 전분기 대비 3.2%포인트나 늘었다. 가장 많이 산 6개 주식은 제이피(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시티그룹, 유에스(U.S.)뱅코프, 골드만삭스 차례다. 버크셔가 내다판 은행주를 주워담은 셈이다.
시장은 버크셔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다. 버핏은 오는 22일 공개될 연례 주주서한에서 투자 방향과 시장에 대한 견해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