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우려했던 ‘주주총회 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다중이 모이는 행사를 피하려는 분위기에 이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둔 상장사들이 아직 주총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거나 주총 장소를 급하게 바꾸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가 강타한 대구·경북 지역이 심각하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 지역에 본사를 둔 12월 결산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05개사 중 이날까지 주총 일정을 공시하지 못한 곳은 62개사(59%)에 달한다. 주총 개최와 사업보고서 제출 시한이 오는 30일이므로, 주총 소집 통지 시한(개최 2주 전)을 고려하면 늦어도 오는 16일까지 통지를 해야 한다. 주총 소집까지 남은 일정이 매우 촉박한 것이다.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대구 지역 기업들이 주총 행사장을 대관하려는데 해당 장소 주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영업을 중지하는 등 대관이 잘 안 되는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 본사가 있는 상장사들도 주총 장소 확보에 애를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코로나19로 사업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주총 장소를 외부에서 물색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금호석유화학과 에스원은 당초 서울 명동의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관에서 주총을 열기로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대관이 취소되자 급히 장소를 변경했다.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도 시설 대관을 중단하면서 이곳을 주총 장소로 예약했던 반도체 제조업체 엑시콘은 다른 장소를 찾고 있다.
주총 개최 및 사업보고서 제출을 연기하려는 기업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이 주총 개최 및 사업보고서 제출 연기 신청 접수를 시작한 지난달 28일 경북 구미의 휴대전화 부품업체 케이에이치(KH)바텍이 처음으로 사업보고서 제출 연기 및 제재 면제를 신청했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남은 일정을 감안하면 이번 주부터 사업보고서 제출 연기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쏟아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주총을 정상 개최하는 상장사들은 주총장 내 코로나19 전염을 막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 등은 “주총장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해 발열이 의심되는 경우 출입을 제한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주주만 입장시키겠다”고 주총 소집 공고문을 통해 안내했다. 이에 따라 주주들의 주총장 참석률이 예년에 비해 크게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방역 부담도 덜고 소액주주의 권리 보장을 위해 전자투표를 활성화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발행주식 수 대비 전자투표 행사율은 5.04%에 그쳤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전자투표·전자위임장 서비스를 이용하는 상장사는 이달 열리는 모든 주총에서 이용 수수료 전액을 면제 받는다. 지난해까지 예탁원과 미래에셋대우만 제공하던 전자투표 서비스를 올해부턴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도 제공하기로 하면서 기업들로서는 전자투표 기관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