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정책금리 0.5%포인트 전격 인하로 한국은행의 대응이 주목받는 가운데 이주열 한은 총재는 정책 여건의 변화를 적절히 고려해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 인하를 직접적으로 시사하는 언급은 없었지만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동결 직후 보인 관망 자세에서는 한발 나아간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4일 긴급 소집한 간부회의를 마친 뒤 낸 보도자료에서 “미국의 정책금리가 국내 기준금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져 향후 통화정책 운영에 이 같은 여건의 변화를 적절히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고 밝혔다. 미 연준은 3일(현지시각)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를 통해 정책금리를 1.00~1.25%로 내려, 상단 기준으로 한국의 기준금리(1.25%)와 같아졌다.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과 국내의 기준금리 역전폭이 커지면 자본유출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해소되면서 그만큼 통화정책 여력이 커진 것이다.
이 총재는 이어 “통화정책만으로 코로나19의 파급 영향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과의 조화를 고려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침 이날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역대 4번째로 큰 11조7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시장에서는 정책공조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4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연준을 시작으로 다른 나라로 통화 완화 대응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도 한은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주요 7개국(G7) 정책 당국자들은 3일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편에서는 미국이 오는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사태가 더 번질 경우 이달 중 긴급 금통위가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법은 의장이나 2명 이상 금통위원의 요구에 따라 임시 금통위를 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 연준이 정례회의가 아닌 긴급회의를 통해 금리를 0.5%포인트 이상 내린 것은 2001년 3월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이후 이번이 7번째다. 이 가운데 2001년 ‘9·11테러’와 2008년 10월 금융위기 당시에는 연준에 이어 한은도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각각 0.5%포인트와 0.75%포인트 내린 바 있다.
이날 조기 금리 인하의 단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시장은 적잖이 실망하는 분위기다. 이 총재의 발언이 나오기 전에 마감된 국내 금융시장은 미 연준의 선제적인 금리 인하에만 뜨겁게 반응했다. 채권 금리는 일제히 급락했고 코스피는 2.24%(45.18) 급등했다. 달러 약세로 원-달러 환율은 7.4원 내린 1187.8원으로 마감됐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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