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다시 1500선 아래로 내려가고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등 금융시장이 흔들린 23일 오후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미 통화 스와프(맞교환)의 효과가 시들해지며 국내 금융시장이 반등 하루 만에 다시 추락했다. 미국의 대량실업 발생 가능성 등 코로나19의 실물경제 충격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어서다.
23일 코스피는 5.34%(83.69) 급락한 1482.46으로 장을 마쳤다. 전 거래일(20일) 급등분(108.51)의 80% 가까이를 반납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달러 확보를 위해 6400억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 팔면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0원 급등(원화가치 급락)한 1266.5원으로 마감됐다. 국고채 금리도 일제히 상승(채권값 하락)해 주식·원화·채권 가격이 모두 떨어지는 ‘트리플 약세’를 나타냈다.
지난 19일 발표한 달러 스와프 효과가 ‘반짝 하루’로 끝난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경제에 끼칠 영향이 충격적인 수준으로 잇따라 전망되고 있는 게 시장을 흔들었다. <블룸버그>는 오는 26일(현지시각) 발표될 미국의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평소 20만건에서 150만건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1967년 1월 해당 통계 발표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대치였던 1982년 10월의 69만5천건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경제활동 중단 조처로 미국 경제가 ‘서든스톱’(갑작스러운 경제 마비)을 맞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더 나아가 많은 사업자들이 문을 닫으면서 미국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25만건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실업률의 선행지표인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지난주 28만1천건으로 1주일 새 약 7만건이 늘어났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는 “미국 실업률이 2분기에 30%로 치솟고 국내총생산(GDP)이 50% 급감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시엔비시>(CNBC) 방송은 “미국 실업률이 1940년 이래 최고치로 상승해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전했다. 유럽 경제 역시 서든스톱이 예상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코로나19 위기가 6월 초나 그 이후까지 지속된다고 가정할 때 올해 경제활동 감소는 2009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고용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날 “한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활동의 광범위한 혼란이 이미 고용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앞으로 수치가 악화할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초강세를 보였던 달러는 최근 주춤거리고 있지만 국제 자금시장에서 달러 품귀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신용경색 우려로 모두가 달러를 움켜쥐고 내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스케이(SK)증권은 “달러가 부족하다는 의미는 외환보유고와 같은 ‘보유량’이 아니라 ‘이동’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이 달러를 더 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미국 회사채 시장에서는 투기 등급보다 투자 적격 채권값의 하락폭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정유·항공회사 등 수많은 기업의 신용등급이 투기 등급으로 강등될 것이라는 신호다.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년 안에 고위험 채권 부도율이 10%를 웃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달러 사재기와 자금시장 경색으로 원-달러 환율이 조만간 1300원대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008년 한-미 통화 스와프 당시에도 6개월가량 환율의 추가 상승이 나타났다”며 “2분기에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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