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리뷰] 2010 아시아미래포럼/
정부는 기업에 어떤 존재인가
정부는 기업에 어떤 존재인가
2008년 미국과 영국 등을 진앙으로 한 글로벌 경제위기는 아시아 국가들이 1990년대 말 이후 서둘러 배워보려 했던 영미식 패러다임에 대한 의구심을 일깨웠다. 강력한 국가 주도 성장 정책의 명암을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시장 역시 국가만큼이나 양지와 음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아시아 국가들은 각국의 경제 발전 단계와 구체적인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여건을 고려한 정확한 제도와 정책을 개발해야 할 때다. 특히 생산의 제도로서 기업, 교환의 제도로서 시장, 집단적 이해를 정치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로서의 국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지속가능한 경제의 패러다임을 확립하는 게 위기 이후 아시아에 쏠린 세계인의 주목에 부응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강력한 국가의 기획과 지원 아래 성장한 아시아의 기업들은 시장과 국가 사이에서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책임을 조화시킨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까?
경탄의 대상에서 실패의 상징으로
‘2010 아시아미래포럼: 동아시아 기업의 진화’에서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지적해 온 세계적 경제학자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은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장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원제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를 비롯해 그간의 저서에서 다룬 국가와 시장 사이의 관계 등에 대해 풍성한 역사적 사례와 논거를 담아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돌이켜 보면 동아시아 경제는 경탄과 모방의 대상에서 실패와 좌절의 상징으로 급전직하했다. 다시 그 동아시아가 세계에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가 1950년대 이후 이룩한 경제사회 발달은 ‘압축성장’이란 단어로 표현된다. 특히 일본 및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NICs,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의 성장은 서구사회가 150~200년 걸려 이룬 것을 불과 30~40년 만에 따라잡은 놀라운 것이었다.
20세기 후반 50년 동안 이들 5개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per capita income)은 매년 평균 5~6%씩 증가했다. 유럽과 북미 국가들이 산업혁명기에 달성한 성장률이 연 1% 남짓이고, 자본주의 황금기였다는 1950~75년 사이에 기록한 성장률이 연 3%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던 것을 보면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세가 얼마나 박진감 넘쳤는지 알 수 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이들 국가는 영아사망률, 평균수명, 문맹률 등 여러 인간개발 지표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개선을 일구어 냈다. 물론 권위주의적인 정부, 인권 유린, 노조 탄압, 부정부패 등 어두운 측면이 경제 성장과 함께한 것도 사실이다. 장하준 교수가 꼽은 동아시아 특징 90년대 초까지 작동해 온 ‘동아시아 경제발전 모델’의 특징을 장하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먼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산업발전에 두고 거시관리 등 다른 정책 목표를 이에 종속시켰다. 필요하면 수입품이나 사치품에 높은 특별세를 붙여 소비를 억제하거나, 소비재나 민간에 대한 은행대출을 제한하기도 했다. 둘째, 수출주도형으로 성장해 왔으면서 대외 개방은 상당히 선별적이었다는 것이다. 상품거래나 기술, 차관 등은 개방했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는 덜 개방적이었고, 자본시장은 거의 열지 않았다. 셋째, 산업정책 측면에서 국가가 특정 산업이 기술을 습득하고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세제, 금융,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했다. 비슷한 정책을 쓰고도 실패한 곳도 있는데 동아시아의 산업정책이 유효했던 것은 정책이 현실적이고 유연했으며 성과가 안 보이면 언제든 지원을 그만둘 만큼 국가가 민간부문에 대해 갖는 재량권이 강했다는 점이다. 불평등 심화시킨 신자유주의 개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1994년 ‘동아시아 경제성장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요소(자본, 노동) 투입을 늘린 결과라서 곧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고 예측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규모가 커진 아시아 경제가 시장 요소를 점진적으로 수용해 질적 변환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90년대 일본 경제의 침체와 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따라 배울 교본이었던 아시아 발전 모델은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어서 한시바삐 버려야 할 유습으로 전락했다. 과도한 국가 개입이나 종신고용 등 시장을 왜곡하는 제도, 부패, 투명성 부족 등이 비효율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일본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보려고, 다른 국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처방한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광범위하게 채택했고, 기업경영에도 주주자본주의 원칙이 수용된다. 그렇지만 이런 개혁은 소득 불평등의 심화와 경제적 불안정 및 사회적 분열의 확대를 낳았다. 아울러 세계경제의 구조적 불균형과 반복되는 위기는 지속가능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절실히 일깨웠다. 그리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며 영미식 시장만능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경제성장의 필요충분조건인 양 설파하던 국제통화기금마저도 실패를 자인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다. 그사이 한국과 중국 기업들은 점점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분열과 경제적 위기감은 계속된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시아미래포럼’에서는 장하준 교수의 대안을 듣고, 여기에 대해 한중일 석학들이 토론을 벌이면서 이 새로운 질서의 단초를 제시할 계획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20세기 후반 50년 동안 이들 5개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per capita income)은 매년 평균 5~6%씩 증가했다. 유럽과 북미 국가들이 산업혁명기에 달성한 성장률이 연 1% 남짓이고, 자본주의 황금기였다는 1950~75년 사이에 기록한 성장률이 연 3%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던 것을 보면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세가 얼마나 박진감 넘쳤는지 알 수 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이들 국가는 영아사망률, 평균수명, 문맹률 등 여러 인간개발 지표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개선을 일구어 냈다. 물론 권위주의적인 정부, 인권 유린, 노조 탄압, 부정부패 등 어두운 측면이 경제 성장과 함께한 것도 사실이다. 장하준 교수가 꼽은 동아시아 특징 90년대 초까지 작동해 온 ‘동아시아 경제발전 모델’의 특징을 장하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먼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산업발전에 두고 거시관리 등 다른 정책 목표를 이에 종속시켰다. 필요하면 수입품이나 사치품에 높은 특별세를 붙여 소비를 억제하거나, 소비재나 민간에 대한 은행대출을 제한하기도 했다. 둘째, 수출주도형으로 성장해 왔으면서 대외 개방은 상당히 선별적이었다는 것이다. 상품거래나 기술, 차관 등은 개방했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는 덜 개방적이었고, 자본시장은 거의 열지 않았다. 셋째, 산업정책 측면에서 국가가 특정 산업이 기술을 습득하고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세제, 금융,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했다. 비슷한 정책을 쓰고도 실패한 곳도 있는데 동아시아의 산업정책이 유효했던 것은 정책이 현실적이고 유연했으며 성과가 안 보이면 언제든 지원을 그만둘 만큼 국가가 민간부문에 대해 갖는 재량권이 강했다는 점이다. 불평등 심화시킨 신자유주의 개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1994년 ‘동아시아 경제성장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요소(자본, 노동) 투입을 늘린 결과라서 곧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고 예측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규모가 커진 아시아 경제가 시장 요소를 점진적으로 수용해 질적 변환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90년대 일본 경제의 침체와 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따라 배울 교본이었던 아시아 발전 모델은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어서 한시바삐 버려야 할 유습으로 전락했다. 과도한 국가 개입이나 종신고용 등 시장을 왜곡하는 제도, 부패, 투명성 부족 등이 비효율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일본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보려고, 다른 국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처방한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광범위하게 채택했고, 기업경영에도 주주자본주의 원칙이 수용된다. 그렇지만 이런 개혁은 소득 불평등의 심화와 경제적 불안정 및 사회적 분열의 확대를 낳았다. 아울러 세계경제의 구조적 불균형과 반복되는 위기는 지속가능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절실히 일깨웠다. 그리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며 영미식 시장만능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경제성장의 필요충분조건인 양 설파하던 국제통화기금마저도 실패를 자인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다. 그사이 한국과 중국 기업들은 점점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분열과 경제적 위기감은 계속된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시아미래포럼’에서는 장하준 교수의 대안을 듣고, 여기에 대해 한중일 석학들이 토론을 벌이면서 이 새로운 질서의 단초를 제시할 계획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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