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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돌봄’요구하는 디지털캐릭터, 공감 도우미? 훼방꾼?

등록 2021-12-13 03:37수정 2021-12-13 03:46

아이들 게임기로 출시됐지만
게임문화·가상현실 큰 영향

“사용자와 유대감 형성하도록
돌봄 게을리하면 죄책감 설계”

“인간의 감정적 취약점 이용한
인간성 훼손 우려” 비판 등장

인공지능·메타버스 확대 따라
가상-현실 뒤섞임 문화에 영향
다마고치 ‘25살’

1996년 11월 일본에서 처음 발매된 다마고치 게임기.
1996년 11월 일본에서 처음 발매된 다마고치 게임기.
달걀 모양의 픽셀에서 부화한 ‘디지털 애완동물’ 다마고치가 25살이 됐다. 다마고치는 이용자가 사이버 캐릭터를 돌보면서 감정적 소통을 하는 단순한 기능의 게임기이지만 오늘날까지 인기가 이어지며 게임 문화와 가상현실 기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메타버스, 반려로봇, 인공지능 챗봇 등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뒤섞임이 확대되는 디지털 세상에서도 다마고치의 흔적은 뚜렷하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조사 반다이는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신 제품은 초기 제품과 형태가 비슷하지만, 컬러와 기능이 추가됐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조사 반다이는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신 제품은 초기 제품과 형태가 비슷하지만, 컬러와 기능이 추가됐다.

■ 달걀 모양의 게임기 선풍적 인기

일본의 게임기 업체 반다이는 1996년 11월23일 휴대용 사이버 동물 돌봄 기능의 어린이용 게임기를 출시했다. 다마고치는 일본어의 ‘다마고’(달걀)와 ‘워치’(시계)의 합성어로, 조약돌 모양에 자그마한 액정화면과 3개의 버튼이 달려 있다. 버튼을 눌러 먹이 주기, 숙면을 위한 불 꺼주기, 놀아주기, 똥 치우기 등을 해주면서 캐릭터를 돌보고 키우는 게임이다. 생명체처럼 제때 적절한 돌봄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쇠약해지거나 병에 걸리고 죽는다. 출시 직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국내에도 수입돼 짧은 기간에 널리 보급됐다.

아이들의 열광적 인기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교육부는 1997년 5월 수업방해와 생명경시 풍조를 이유로 초·중·고교생들이 다마고치를 학교에 갖고 오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1998년 20대 운전자가 운전중 다마고치에게 먹이를 주느라 자전거 선수들을 치어 숨지게 하는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다. 반다이는 지금까지 8200만대 넘는 다마고치를 판매했으며, 스마트폰 시대인 오늘날에도 몇 년마다 업그레이드 제품을 출시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의 앙키가 판매한 어린이용 로봇 코즈모는 액정을 통해 1200여가지 표정을 만들어내며 이용자와 공감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미국의 앙키가 판매한 어린이용 로봇 코즈모는 액정을 통해 1200여가지 표정을 만들어내며 이용자와 공감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 다마고치의 유산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 최근호에 따르면, 다마고치는 기기를 꺼둔 상태에서도 게임을 종료할 수 없는 ‘연속 플레이’ 개념을 게임계에 도입했으며, 게임 캐릭터에게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해 게이머의 감정적 반응과 애착을 자극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게 특징이다. 무엇보다 다마고치는 디지털 공간과 현실 세계와의 공간을 모호하게 만든 가상현실을 구현한 비디오게임의 대표적 사례다. 다마고치가 도입한 가상 캐릭터 돌봄 기능은 이후 로봇과 게임 분야에서 적극 채택됐다. 반다이는 다마고치의 성공 이후 이듬해인 1997년 전투와 진화 기능을 결합시켜 캐릭터 성장 게임 디지몬을 출시했다. 돌봄 기능의 다마고치가 여자 어린이를 주로 공략했다면, 전투 기능의 디지몬은 남자어린이가 주된 고객이었다.

어린이용 사이버 애완동물 다마고치는 노인용 로봇강아지 아이보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소니는 1999년부터 아이보 판매에 나섰다가 2014년 서비스를 중단했는데, 이에 아이보 주인들이 사찰에 모여 로봇강아지의 죽음을 위로하고 천도재를 지낸 일이 알려졌다. 일본 노인들이 무생물체인 로봇을 생명체처럼 대하며 공감하는 모습은 적잖은 화제였다.

■ 기계상대 감정 소통 논란

다마고치의 성공은 인간의 ‘돌봄 욕구’에 기반하는데 이는 윤리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제조사쪽은 아이들이 디지털 캐릭터 돌봄을 통해 건강과 성장에 필요한 조건과 책임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내세웠지만, 부작용도 함께 드러났다. 2016년 말 미국에서 출시되어 인기를 누린 앙키의 어린이용 장난감로봇 ‘코즈모’ 사례다. 코즈모는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1200여 가지 표정과 동작을 나타내는 탱크 모양의 로봇인데, 흥분, 놀람, 긴장, 행복, 슬픔, 좌절 등을 표현해 사용자와의 감정적 교감을 목적으로 한다. 앙키의 최고경영자 보리스 소프먼은 “코즈모는 사용자에게 깊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밥을 먹이고 놀아주는 등의) 돌봄을 게을리하면 사용자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설계했다”고 밝혀 논란을 불렀다. 소셜 로봇과 캐릭터가 이용시간을 늘리기 위해 장착하고 있는 기능적 특징이다.

돌봄 로봇에 대해 수십년간 연구해온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저자 셰리 터클은 감정과 공감을 흉내내는 귀여운 소셜로봇이 인간의 감정적 취약점을 이용해 인간성을 훼손하는 관계로 이끌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들은 감정적 피드백을 주고 돌봄이 필요한 로봇을 만나면 생명체의 일종으로 여기게 되는데, 이러한 기계 돌봄이 정작 사람을 향해서는 냉담과 무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사람의 감정과 관심은 유한한 능력이자 자원이기 때문에, 기계나 사이버 캐릭터를 지나치게 소중하게 돌보는 행위는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계를 소홀히 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공지능과 챗봇의 등장은 기존의 돌봄 기능 게임기나 반려로봇이 불러왔던 윤리 논쟁이 더욱 복잡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국내에서 올해초 인공지능 채팅로봇 이루다가 사용자들의 어뷰징 논란 끝에 서비스가 중단된 일도 한 사례다. 메타버스를 홍보하는 이들은 디지털 실감 기술을 통해 갈수록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마고치는 아이들의 단순한 게임기였지만,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가상 현실은 현실을 흔드는 강력한 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사진 각 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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