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일본에서 13살 소녀가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웹브라우저에서 ‘닫기’ 버튼을 눌러도 팝업창이 끊임없이 뜨는 코드를 인터넷에 올린 게 문제가 됐다. 혐의는 형법상 ‘부정 지령 전자적 기록 작성죄’. 일본에서 ‘바이러스 유포죄’로 불리는 조항이다. 경찰 조사에서 소녀는 단순히 재미로 코드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코드를 공유한 성인 남성 2명도 체포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이 코드를 직접 실행해보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보세요. 염려마세요. 탭을 닫으면 종료됩니다._편집자)
2019년 3월, 일본의 13살 소녀가 웹브라우저에서 무한 반복되는 알림창을 띄우는 코드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은
기소유예로 마무리됐지만, 단순 장난에 경찰이 과잉대응했다는 여론이 커졌다. 일본해커협회가 소녀를 비롯해 기소된 3명을 돕겠다고 나섰고, 600명 넘는 시민들이 우리돈 7천만원이 넘는 돈을 보탰다. 한 일본인 개발자는 앞선 코드처럼 무한반복되는 팝업창을 띄우는 코드를 만들어 ‘체포됩시다’(Lets-get-arrested)란 이름으로 코드 공유 사이트
깃허브에 올렸다. 재미삼아 올린 코드를 근엄하게 심판하는 공권력에 개발자답게 코드로 저항의 메시지를 표현한 셈이다.
창작자는 작품으로 말하지만 메시지를 늘 드러내는 건 아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를 보자. 미국 의사 프랭크 린 메시버그는 1990년 논문을 통해 그림 속 하나님과 인간 군상을 감싼 붉은 천이 인간의 뇌 모습과 해부학적으로 거의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에는 존스홉킨스대 교수들이 다른 그림에서도 뇌 해부도가 보인다며 ‘천지창조’가 미켈란젤로가 해부학 지식을 뽐내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은 HBO 드라마 ‘웨스트월드’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암시를 주는 데 차용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속에 해부학 코드가 숨어 있다는 주장이 미국 의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사진은 ‘아담의 창조’.
기원전 440년 그리스 왕 히스티아에우스는 노예의 머리를 깎고 두피에 문신으로 비밀 메시지를 새겨 양아들에게 보냈다. 그리스어로 ‘숨겨져 있다’는 뜻의 ‘stegano’와 ‘통신’을 뜻하는 ‘graphos’를 합친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가 탄생한 순간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9.11 테러 당시 모나리자 그림 속에 비행기 도면을 숨겨 테러범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자가 작품으로 말한다면 개발자는 코드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1977년 개발자 론 밀러는 아타리 게임 ‘스타십1’ 안에 특정 명령을 실행하면 자신의 이름을 보여주는 기능을 몰래 넣었다. 세계 최초의 이스터에그엔 자기 이름을 알리고픈 개발자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 이스터에그는 숨겨져 있을 뿐 잘못 짠 코드는 아니기에, 코드 오류를 잡는 작업인 ‘디버깅’ 과정에서도 발견하기 힘들다. 우연히 마주한 메시지에 깜짝 놀라며 즐거워하거나 감탄하는 것, 그게 달걀을 숨긴 주된 목적이니까.
메시지를 숨기는 행위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공존한다. 꽁꽁 감추면서 동시에 내심 드러내고픈 욕망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나 히스티아에우스가 은폐에 주력했다면 미켈란젤로나 이스터에그는 드러냄을 염두에 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드는 때론 재미나 해학으로 치환되고, 저항과 풍자를 투사하기도 한다. 군부의 총구가 심장을 겨누던 지난해 4월, 미얀마 국민들은 부활절 달걀에 저항과 희망의 메시지를 새겨
에스엔에스로 퍼뜨리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2021년 부활절을 맞아 미얀마 국민들은 부활절 달걀에 희망과 저항의 메시지를 넣어 에스엔에스로 공유하며 군부 쿠데타 정권에 저항했다.
민중가수로 입지를 다진 한 가수의 신곡이 최근 입길에 올랐다. 특정 대통령 후보 부인을 연상케 하는 라임(각운)을 반복한 게 본질은 아니었다. 노랫말은 풍자의 당사자를 비롯해 비유 대상으로 소환한 유명 팝가수의 외모를 비아냥댔다. 그가 굳이 숨기지도 않은 그 ‘코드’엔 풍자도 재미도 없었고, 인간에 대한 혐오만 오롯이 담겼다. 코드 표현의 자유는 혐오까지 ‘디버그’하진 않는다.
이희욱 미디어전략팀장
asada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