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세진 노동강도 ‘퇴근없는 감옥’?
[한겨레 특집] 모바일 오피스
스마트폰 업무활용의 명암
모바일 오피스 붐이 불면서 값이 90만원 안팎에 이르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직원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직원들이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업무시간에 처리하던 업무들을 언제, 어디에 있든지 처리할 수 있는 모바일 오피스 환경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기업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직원 처지에서는 편리성을 대가로 훨씬 세진 노동강도에 노출된다는 뜻도 된다. 모바일 오피스 열풍에 가려진 ‘또다른 얼굴’이 숨어 있는 셈이다.
기업은 효율증대 환영…노동자는 ‘끊김없는 일’ 매몰
작업방식·고용 큰 변화…“결국 시스템과 사람의 문제”
■ 1인당 노동강도 더욱 높아져 기업들이 너도나도 모바일 오피스 도입에 나서는 목적은 생산성 향상을 통한 수익 증대에 있다. 캐나다의 마케팅연구기관인 입소스레이드(Ipsos-Reid)가 지난 2007년 블랙베리 도입 기업과 사용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오피스로 직원 1인당 종전보다 하루 평균 60분의 업무시간을 절약시켜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1년 중 154일 동안 블랙베리를 사용하는 경우, 기업의 투자 대비 수익률은 238%로 나타났으며, 해마다 38%의 효율성을 증가시켜줘 직원 1인당 약 4000만원(3만3000달러)의 가치를 낳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정작 직원 처지에서는 이런 결과가 무조건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예전엔 사무실을 나오면 이튿날 복귀해서야 처리할 수 있던 서류 결재나 전자우편 회신, 회사 업무프로그램 접속이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 등에서 업무시간 외에 일하게 되는 경우를 고려한 조항이나 보상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필요성도 생기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끊김없이’(Seamless)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과 직원 1인당 하루에 60분의 근로시간을 줄여준다는 통계는 곧 종전보다 새로운 업무시간이 1시간 더 많아지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도 된다. 결국,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게 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 기존 노사관계 근본적 변화 뒤따를듯 실제로 지난 3월 서울도시철도 노동조합이 기술분야 근무자 1107명을 설문조사해 봤더니, 스마트폰 도입 이후 “전보다 노동강도가 매우 강화됐다”는 응답이 62.4%나 됐다. 업무 효율성에 대해서는 “기존과 차이 없다”(34.7%)거나 “전혀 도움이 안 된다”(45.1%)는 응답자가 많았다. 더구나 응답자의 92.4%는 “(스마트폰 도입으로) 고용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대답했다. 반드시 스마트폰 때문만은 아니지만, 기술직 유지·보수 업무 인원은 2008년 2000명에서 현재 1400여명으로 감축됐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업무처리 과정을 관리하면서 개인별 실적 경쟁이 심해질 것이란 응답률도 80%가 넘었다. 윤승훈 노조 선전홍보국장은 “개인 실적이 점수로 환산돼 성과연봉제에 반영되는 식으로 노동 통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모바일 오피스 시대의 어두운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도시철도공사 노조만의 기우일까?
삼성경제연구소는 모바일 기기의 확산에 따라 재택근무하는 ‘모바일 근무자’의 수가 올해 말 세계적으로 10억명을 넘고, 2013년엔 12억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9시 출근-6시 퇴근’이라는 기존의 표준화된 근무시간은 물론이려니와, 작업공간, 작업방식 등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유연한 노동’을 추구하려는 기업 전략과 맞물리면, 비정규직 증가 등 고용관계나 조직, 노사관계에까지도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직원의 현재 위치와 행동 반경까지 통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국내 노동계의 고민이나 대응은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을 좀체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황준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건 결국 시스템과 사람의 문제”라며 “기업이 모바일 오피스를 통제수단으로 활용하는 순간 ‘오픈 스페이스’를 열기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작업조직이 유연해지고 직장 내 소통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닫혀버릴 수 있다는 경고다.
구본권 황예랑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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