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디카
올림푸스·삼성전자·소니 등 신제품 출시 잇따라
업계 “올 점유율 30% 돌파…내년 50% 넘을것”
<하이브리드: 렌즈 교환식>
업계 “올 점유율 30% 돌파…내년 50% 넘을것”
<하이브리드: 렌즈 교환식>
생태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카메라 분야에서도 순종은 잡종에 결국 밀려날 것인가? 일시적인 유행이 꺾이면 오랜 세월 검증받아온 ‘우수형질’의 가치가 다시 드러날 것인가?
카메라 세계에서 순수혈통과 잡종혈통 간에 활발한 경쟁이 일어나면서, 기존 질서가 뒤바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용도별로 렌즈를 바꿔 끼워 쓸 수 있는 일안렌즈반사식 디지털카메라(DSLR)와 휴대와 조작이 편리한 콤팩트 디카(똑딱이)로 양분돼 있던 시장에 ‘잡종’(하이브리드)이 출현하면서 시작된 변화다.
하이브리드 디카는 콤팩트 디카의 작고 가벼움에 일안렌즈반사식 카메라의 특징인 렌즈 교환성과 조작성을 갖춘, 신개념 제품이다. ‘잡종’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두 범주 제품들의 특징을 혼합해 만든 게 특징이다.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그대로 찍을 수 있게 해주는 일안반사식 카메라에는 반사거울과 오각프리즘이 필수였고 이는 카메라 모양을 결정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거울 없이도 ‘카메라에 보이는 그대로’ 찍을 수 있게 해주고, 크기와 무게도 대폭 줄였다. 일본에서는 ‘미러리스’(Mirrorless) 렌즈교환 디카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2008년 12월 파나소닉이 ‘루믹스 지(G)1’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지난해에 올림푸스가 직사각형의 ‘펜’ 시리즈와 렌즈군을 소개해 선풍적 인기를 끌고, 파나소닉도 크기를 대폭 줄인 ‘지에프(GF)1’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도 이 분야에 뛰어들어 ‘엔엑스(NX)10’을 출시하고 고급형 카메라 시장에서 재도전을 다짐했다. 올해엔 소니도 ‘넥스5’와 ‘넥스3’를 들고 이 시장에 진입했다. 니콘마저 내년에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 밝힌 상태다.
소니가 지난 6월 국내 출시한 넥스는 출시 50일 만에 1만대를 판매하는 실적을 올렸다. 넥스5는 렌즈교환식 카메라로 가장 작은 크기이면서 일안렌즈반사식 디카 수준의 1420만화소 이미지 센서를 갖춘 게 특징이다. 대기 수요가 반영된 출시 초라는 점을 생각해도, 소니의 실적은 기존 업체들을 고민스럽게 하고 있다. 소니코리아 배지훈 팀장은 “소니에서 넥스 판매량이 일안반사식 디카의 2배 수준”이라며 “국내 디카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의 점유율은 올 상반기 23%이던 게 넥스 출시 이후 30%를 넘어섰으며 내년엔 50% 이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림푸스, 파나소닉, 삼성 등이 개척하고 경쟁해온 하이브리드 시장에 대해 캐논, 니콘, 소니 등 고급형 카메라 시장의 강자들은 ‘마이너 업체들의 틈새시장’이라며 짐짓 무시해왔다. 실제로 하이브리드 시장을 개척한 파나소닉과 올림푸스는 캐논과 니콘이 주도하는 고급 카메라 시장에서 고전해왔으며, 기존 강자들의 주도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쟁틀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두 업체는 ‘마이크로 포서즈’라는 규격을 만들어 함께 쓰고 렌즈를 공유하는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다. 삼성도 미놀타, 펜탁스와 규격을 공유하는 전략을 쓰며 고급카메라 시장 진출을 시도해왔지만 거푸 실패한 뒤 독자규격으로 하이브리드 분야에 뛰어들었다.
메이저 업체들이 ‘틈새’라고 보던 시장에 뛰어든 것은 하이브리드가 무시 못할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과 ‘제 살 깎아먹기’를 우려해 팔짱을 끼고 있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해 7월 출시된 올림푸스 ‘펜’은 지난 1년간 월평균 30%를 웃도는 성장률을 보이면서, 회사 전체 출시 디카 중 40% 넘는 점유율로 주력제품이 됐다.
하이브리드 디카가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의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는 모습은 매출과 점유율 증가 외에도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중위권 업체에서 선두 업체로 경쟁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모델들과 신기술들이 채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액세서리 제품이 생겨나고 있다. 고급형 카메라 시장에서의 성공은 ‘서드파티’의 존재 여부로도 구분된다. 카메라 제조업체들이 제공하는 렌즈 외에도 시그마, 토니카, 탐론 등과 같은 렌즈 전문업체(서드파티)들이 니콘과 캐논용 렌즈를 만들고 있어, 이들 제품 사용자들은 풍부한 선택폭에 만족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디카는 특히 여성 이용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림푸스한국에 따르면 펜 구매자에서 여성 비중은 52%다. 이와 함께 하이브리드 디카는 전문가급의 사진 애호가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넥스가 출시된 지 얼마 안 돼 라이카, 캐논, 니콘, 펜탁스 렌즈용 어댑터가 서드파티들에 의해 출시됐다. 사진 마니아들은 카메라 본체 못지않은 돈을 렌즈 구입에 쏟는 경향이 강해, 다른 상표의 제품으로 바꾸고자 할 경우 전환비용이 높다. 어댑터가 있으면 기존 카메라 본체와 렌즈를 유지하면서 렌즈를 바꿔 쓸 수 있는 휴대용 보조 디카를 구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삼성도 다음달 안으로 직사각형 디자인을 채택한 새로운 형태의 렌즈교환식 디카를 내놓을 예정이라 국내에서 하이브리드 디카 경쟁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국내 하이브리드 디카 월별 판매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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