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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5 17:50 수정 : 2005.07.05 17:50

<한겨레>



‘인터넷 실명제’가 헷갈린다.

이해찬 국무총리와 진대제 정통부 장관에 이어 열린우리당까지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5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인터넷 실명제가 사이버 폭력과 명예훼손을 막는 데 상당히 효율적인 방안 같다”며 이달 안에 당의 정책을 확정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공언에도 ‘인터넷 실명제’는 이름 여섯자 말고 정작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 인터넷 실명제 관련 실무를 맡고 있는 정통부 인터넷정책과 실무자조차 “학계나 시민단체나 저마다 말하는 범위나 개념이 다르다”며 “인터넷의 과도한 익명성을 제한할 대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인식말고는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하다 못해 인터넷 실명제의 정의부터 갖가지다. 게시판에 작성자의 실명을 밝히게 하는 것부터 △실명 대신 아이디를 쓰되 관리자는 실명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 △인터넷뱅킹처럼 신용정보회사 등의 인증을 거치게 하는 것 △이름은 물론 개인신원까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까지 범위와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보면, 돈이 오가는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회원가입 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꼭 적어야 하는 일부 포털까지도 이미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실명제를 벌써 하고 있는데, 또 무슨 실명제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어떤 실명제를 도입할지 결정하더라도, 어디까지 적용할지도 미지수다. 대규모 포털 사이트만 적용할 것인지, 관공서 사이트만 적용할 것인지, 각 사이트에서 어떤 게시판에 적용할 것인지 등 다양하다. 특히, 비리 고발 같이 익명 보장이 필수적인 경우에 대한 명확한 대안도 없는 실정이다.

실명제의 형태나 범위를 정하더라도, 실명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현재 인터넷상에서는 거의 대부분 주민등록번호가 실명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지만,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안정적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실명 확인이 늘어나면 그만큼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도 심각하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를 실명확인의 수단으로 계속 사용할 것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도 검토하고 있다”며 “실명확인을 위해 반드시 주민등록번호만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좋은 대안이 있다면 이미 어디서든 활발히 사용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는데도 인터넷 실명제 도입 찬반 논란이 뜨겁게 불붙어 있는 건 생뚱맞기까지 하다. 여러 포털 사이트들이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해 찬성이 반대를 웃도는 결과를 잇따라 내놓고 있고, 정치권이 이 결과를 실명제 도입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지만, 인터넷뱅킹 수준의 실명제를 도입한다면 찬성률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 제약’이나 ‘자유로운 여론 형성 제약’ 같은 원론적인 수준의 인식에 머무르고 있다. 실명제가 도입되면 개인의 신상이 드러나 심각한 피해를 낳을 수 있다거나, 실명제 자체가 차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등의 문제는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밀양 성폭행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실명이 곧바로 드러나는 싸이월드 이용자는 신원공개에 따라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실명제가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같은 실명제를 하더라도 ‘김미경’처럼 흔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사실상 익명의 혜택을 누려, ‘독고용’처럼 흔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사람과 공평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체조차 불분명한 실명제가 만병통치약처럼 부풀려져 있는 건 더 큰 문제다. 인터넷 실명제 찬성론쪽은 “인터넷상에 범람하는 명예훼손 등의 문제를 막으려면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실명제를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욕설이나 인권 침해성 글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사이트에서는 지금도 글의 내용이 문제가 돼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되면, 수사기관에서 사이트 운영자의 협조를 통해 처벌할 수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실명제를 당장 도입한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개념의 차이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실명제 도입 효과에 대한 평가가 달라 더 신중히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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