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가 발표한 표준요금제의 실태
정부 3개 부처로 구성된 통신요금 티에프(TF)가 3개월여 활동 끝에 통신요금 인하 방안을 내놓았지만, 통화량이 적은 사용자들은 9년 전에 이미 출시됐던 상품보다도 오히려 비싼 요금을 물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사업자들의 눈치만 살피다 기본료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현재의 이동통신요금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대지 않은 탓에, 통화량이 적은 노인이나 실직자 등 경제적 약자의 통신비 부담을 줄여주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방통위가 지난 2일 발표한 통신요금 인하 방안에 따라, 오는 9월부터 에스케이텔레콤(SKT) 가입자가 다달이 내는 기본료는 1만1000원으로 현재보다 1000원 인하된다. 이들 가입자가 월 30분 통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통신요금은 기본료 1만1000원에 초당 1.8원씩 30분에 3240원, 그리고 부가세 10%를 더해 모두 1만5660원이 된다. 하지만 이 금액은 2002년 8월 엘지유플러스(당시 엘지텔레콤)가 출시한 미니요금제를 적용한 1만4320원보다도 오히려 1300원 이상 비싼 수준이다.
통화시간이 줄어들면 통신요금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번 인하 방안에 따르더라도 월 10분 사용 시 통신요금은 1만3280원으로, 미니요금제(8340원)보다 5000원 가까이 더 비싸다. 미니요금제는 9월부터 적용되는 요금제보다 초당 통화요금은 더 비싼 반면, 기본료는 훨씬 싼 게 특징이다. 통화량이 적은 이용자들에겐 그만큼 유리한 셈이다.
이처럼 월 통화량이 일정 수준을 밑도는 사용자들의 통신요금 부담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은 방통위가 기본료를 안정적 수익원으로 삼는 이통사 수익구조에 손을 대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소량 이용자들에게도 높은 기본료를 물렸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소량 이용자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기본료 없는 선불요금제’ 역시 효과를 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 선불요금제는 번호이동이 불가능하고 충전 방식이 불편한데다, 최소 월 1만원 이상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탓에 소량 이용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상태다. 현행 선불요금제는 1만원을 충전할 경우 한달, 5만원을 충전할 경우엔 다섯달이 지나면 잔액이 남아 있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기본료를 3500원 수준으로 당장 인하하는 게 어렵다면 노인·주부 등 소량 이용자를 대상으로 기본료를 크게 낮춘 요금제라도 추가대책으로 내놓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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