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핀 휴대전화 충전기’가 국제표준 됐다더니…
1년뒤 ‘USB방식’ 단일 채택
정부 주도 우물안 대응 눈살
1년뒤 ‘USB방식’ 단일 채택
정부 주도 우물안 대응 눈살
국제적 동향에 둔감한 채 정부 주도로 ‘한국식 표준화’를 시도한 휴대전화 충전기 표준화 시도가 무산됐다. 업체와 사용자들은 국제 표준에 따른 충전기를 새로 만들고, 사야 하는 혼란을 겪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일 보도자료를 내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국제 표준 권고에 따라, 국내에서도 2014년부터 휴대전화 충전방식을 마이크로유에스비(USB) 방식으로 통합한다”고 밝혔다. 이는 1년 전 방통위가 발표한 자료와 딴판인 발표다. 방통위는 지난해 3월 “20핀 방식의 국내 휴대전화 충전단자 규격이 유럽의 마이크로유에스비, 중국의 미니유에스비 방식과 함께 복수 국제 표준으로 채택됐다”며 “국내 방식의 20핀 표준화가 국제 표준으로 지정될 경우 국내 휴대폰 업체들의 제조비용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성과를 홍보한 바 있다.
마이크로유에스비 방식은 노키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진영이 밀고 있는 충전기 방식으로, 그동안 각국과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자기 방식대로의 충전기 표준화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방통위는 이번 표준 채택이 국내 제안이 아닌 유럽식 표준 수용이라는 표현 대신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 등의 국산 스마트폰에 적용 중인 방식으로의 통합”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국제 표준 채택은 그동안 국산 20핀 방식의 충전기 규격이 국제표준 경쟁에서 밀려난 것 말고도 섣부른 정부 주도의 표준화가 시장의 흐름과 동떨어져 불필요한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국제통신연합의 국제 표준 채택으로 시장 상황에 따른 업계의 자율적 선택이 아닌 정부 주도로 진행된 20핀 방식의 표준화 시도는 ‘우물 안 표준화’로 그치며, 업체와 소비자의 혼란만 가져온 결과가 됐다. 삼성과 엘지의 스마트폰 방식에서 보듯 정부의 20핀 표준화 추진에도 불구하고, 시장 수요에 따라 자체적으로 이미 마이크로유에스비 방식의 제품을 생산해온 것이 이를 말해준다.
국제통신연합의 표준 권고가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휴대전화 업체가 이를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애플은 국제 표준과 별도로 자사 휴대용 기기들에 30핀 단자를 사용해오고 있으며, 국제 표준 권고를 받아들일 의향이 없는 것으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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