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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아이폰5 출시?’왜, 한국 소비자만 낚였나?

등록 2011-10-06 11:53수정 2011-10-06 13:13

아이폰5 출시를 기정사실화하여 보도한 신문 보도들. 위에서부터 매경 10월5일치, 서울신문 10월5일치, 서울경제 9월20일치.
아이폰5 출시를 기정사실화하여 보도한 신문 보도들. 위에서부터 매경 10월5일치, 서울신문 10월5일치, 서울경제 9월20일치.
국내에서 기정사실화한 ‘아이폰5 출시’ 외국보도에선 찾아볼 수 없어

언론 스스로 오보를 양산해놓고, 나중엔 “애플에 낚였다”는 보도
 지난 4일(미국시각) 오전 10시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 강당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필 쉴러 수석부사장이 나서서 신제품 ‘아이폰4S’를 발표했다. 한국시각으로는 5일 새벽 2시를 살짝 넘긴 시각이었다.

 지난 6월초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 때부터 공개 여부에 대한 관심을 모아온 ‘아이폰4’ 후속모델이 비로소 베일을 벗은 순간이었다. 그동안 아이폰 새 모델 출시에 대한 갖은 소문이 난무했지만, 애플 쪽이 이와 관련해 공식으로 밝힌 것은 지난 27일 “아이폰에 대해 이야기합시다(Let’s talk iPhone)”라며 미국 일부 매체 기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낸 게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미국 서부시각보다 16시간 이른 국내에선 애플의 ‘아이폰4S’ 발표가 이뤄지기 몇 시간 전인 4일 저녁 때부터 일부 경제신문의 기사로 “4.0~4.3인치 화면 크기의 아이폰5 출시”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있었다. 5일치 아침 지면에서 ‘5세대 아이폰’으로 표현이 달라지긴 했지만, 이미 아이폰4S가 발표된 시점에 난데없는 뉴스가 배달돼 왔다.

 한 신문만 오보를 실은 것은 아니었다.

 오보가 ‘한국시각 새벽 2시’라는 신문 제작 취약시간대에 행사가 열렸기 때문은 아니다. 이번 오보는 국내 언론의 취재와 보도 관행을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날 행사 이전부터 아이폰5 출시에 맞선 삼성전자의 전략을 다룬 종합일간지를 비롯해 다수의 매체들은 애플의 아이폰5 출시를 기정사실화해서 보도했다. 일부 매체들은 며칠전부터 아이폰5의 화면 크기가 커지고 고가형 모델과 저가형 모델이 함께 출시될 예정이라는 내용도 담았다. 

국내 언론은 모델명과 구체적 사양까지 상세한 보도를 했다. 9월29일치 신문들, 위부터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전자신문.
국내 언론은 모델명과 구체적 사양까지 상세한 보도를 했다. 9월29일치 신문들, 위부터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전자신문.
 애플은 한 마디도 ‘아이폰5’에 대해 언급한 적 없다. 다만 “아이폰에 대해 이야기합시다(Let’s talk iPhone)”라는 초청장을 보낸 게 전부인데, 국내 언론은 모델명과 구체적 사양까지 상세한 보도를 한 것이었다. ‘아이폰5’라고 모델명을 적시하지 않은 신문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애플이 4일 아이폰5를 출시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만 기정사실화되어 보도되었지, 국외의 주요 매체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기사였다.

 정보기술 관련한 보도에서 신뢰도가 높은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컴퓨터월드> 등의 매체는 지면이나 온라인에서 애플이 4일 행사에서 아이폰5를 내놓을 예정이라는 보도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발표행사 하루 전날인 지난 3일 <월스트리트저널>이 샌프란시스코발로 보도한 기사인 “New iPhone Risks Same Old Same Old”처럼 , ‘새 아이폰’ 정도로만 다뤄졌다. 아이폰 새 모델의 이름이 아이폰4S인지 아이폰5인지, 화면의 크기나 해상도 등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시판일을 꼭 집어 ‘단독보도’라고 과시하기도 했다. 매경 9월9일치.
시판일을 꼭 집어 ‘단독보도’라고 과시하기도 했다. 매경 9월9일치.
 다만 유독 한국 일부 언론들에서만 ‘아이폰 새 모델들’이 ‘아이폰5’ 또는 4.0인치, 4.3인치의 새로운 디스플레이 사양을 갖춘 제품으로 변신해 있었다. 일부 언론은 한 두달 전부터 한국이 아이폰5를 미국과 같은 날 출시할 것이며, 시판일을 언제라고 꼭 찍어서 보도해왔으며 이를 ‘단독보도’라고 과시하기까지 해오기도 했다. 5일의 4.3인치 5세대 아이폰이 출시됐다는 보도가 난데없이 나타난 게 아니라, 아이폰5를 다룬 일련의 보도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물론 국내 언론의 모든 보도가 ‘아이폰5’를 기정사실화한 것만은 아니었다. 외국 신문들처럼 ‘아이폰 후속모델’ 정도로 표현하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 매체들도 더러 있었다.

 아이폰4S가 모습을 드러낸 5일 일부 언론은 “오보 난무…국내 언론, 애플에 제대로 낚이다”, ‘애플 아이폰4s만 발표…전세계 “낚였다!”’ 는 기사를 인터넷에 실었다.

‘아이폰 후속모델’ 정도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 매체도 더러 있었다. 한겨레 9월24일치, 문화 9월7일치.
‘아이폰 후속모델’ 정도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 매체도 더러 있었다. 한겨레 9월24일치, 문화 9월7일치.
 ‘아이폰5’ 출시 여부가 나라 안팎에서 모두 높은 관심사이긴 했지만, 적어도 주요한 언론에서 한국처럼 “아이폰5 출시”를 기정사실화해서 보도한 곳은 없었다. 일부 국내 언론 스스로 ‘아이폰5 출시’라는 오보를 양산해놓고, 이번엔 “애플에 낚였다”는 보도를 하는 셈이다. 애플이 아이폰4S로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측면은 있을지라도, 애플이 그릇된 정보로 전세계 언론과 소비자를 현혹시킨 대목은,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애플은 출시전 비밀 유지를 중시하기 때문에, 추측 보도는 오보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스티브 잡스가 직접 발표하는 애플 행사를 취재해보면서 국내외 언론의 보도태도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독자의 관심은 높고, 언론사간 경쟁은 치열한 사안이라고 해서 아무데서도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 ‘기사’가 되는 경우가 외국 주요매체에선 거의 없었다.  

 한국은 허울뿐인 정보기술 강국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는 어느 정도 정보기술 언론의 책임 방기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다. 국내 인터넷이 특정 브라우저 전용이거나 인터넷실명제처럼 글로벌 추세를 읽지 못하고 국내에만 고유한 규제와 관행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게 대표적 사례다. 전세계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던 국내 제조사의 스마트폰이 유독 국내 언론에서만 ‘아이폰 대항마’로 여겨졌다가 결국 유례가 드문 ‘소비자 보상’으로 이어진 것도 비슷한 사례다. 한국에서만 ‘아이폰5 출시’ 오보가 유난했던 것도 언론의 기본적인 사실 확인의무 방기와 글로벌 흐름과 동떨어졌음에서 비롯했다. 확인 안되는 사안을 보도하는 속보 경쟁도 취재 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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