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1984년 그래픽 사용자 환경(GUI)을 채택한 컴퓨터 매킨토시를 선보여 정보기술 역사를 새로 썼다. 하지만 그래픽 사용자 환경은 1970년대 제록스연구소에서 처음 개발됐으며, 잡스는 매킨토시에서 이를 베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잡스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말로 응수했다. 민음사 제공
애플, 터치스크린의 ‘밀어서 잠금해제’ 특허에
사용자들 “일반적 사용법인데…” 비판 줄이어
“특허보호, 후발 진입 막는 용도로 활용” 지적
사용자들 “일반적 사용법인데…” 비판 줄이어
“특허보호, 후발 진입 막는 용도로 활용” 지적
“번호를 눌러서 전화 거는 법을 특허신청해야겠다.”
최근 애플이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아이폰 등 터치스크린의 ‘밀어서 잠금 해제’ 기능에 대한 특허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미국의 한 정보기술 사이트에 댓글 형태로 쏟아진 패러디다. “전화기를 팽개쳐서 잠금 해제하기”, “배터리 뺐다 끼워 안드로이드폰 잠금 해제하기” 따위의 댓글도 줄을 이었다.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기가 이 기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터치스크린에서 피하기 힘든 직관적 사용법을 특허로 삼은 데 대한 일반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편이다.
법률이 보호하는 독창성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1984년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도입한 매킨토시를 내놓아 컴퓨터 산업의 지형을 바꾼 이는 애플의 공동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다. 오늘날의 컴퓨터 대중화로 이어진 출발점이기도 하다. 복잡한 명령어 대신 그림 모양의 아이콘을 마우스로 눌러 실행시키는 조작법은 오늘날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시대를 맞아 터치스크린을 통해 더욱 직관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개발한 게 애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작 1970년대에 이미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개발한 주인공은 제록스의 팰로앨토연구소(PARC)다. 잡스와 애플 개발자들이 1979년 제록스연구소를 방문해 이를 접한 것은 컴퓨터 역사상 ‘가장 유용한 도둑질’ 순간으로 남아 있다. 잡스는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말했다”며 “우린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플은 제대로 활용되지 않던 기술을 갈고닦아 뛰어난 가치를 부여했고, 이는 결국 어마어마한 소비자 이익으로 귀결된 셈이다.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둘러싼 업체 간 송사 과정도 이채롭다. 지난 24일 발간된 스티브 잡스 자서전에는 컴퓨터 산업의 특허분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분야인 ‘그래픽 사용자 환경’(GUI)을 둘러싸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제록스 사이에 벌어진 소송전 전말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988년 애플은 엠에스와 휼렛패커드(HP)를 상대로 이들이 매킨토시의 ‘모습과 느낌’(look and feel)을 베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엠에스는 매킨토시가 나온 뒤 도스(DOS) 명령어 방식의 피시 운영체제를 윈도 방식으로 바꿔 큰 성공을 거둔 터였다. 하지만 애플은 1994년 결국 패소했다. 법원이 ‘모습과 느낌’이라는 모호한 논거 대신 ‘구체적인 실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잡스가 “우리 걸 도둑질했다”며 엠에스의 창업주 빌 게이츠를 만나 공격을 퍼붓자, 이에 게이츠가 반박한 대목이다. “우리 둘에게 제록스란 부자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텔레비전을 훔치려 그 집에 침입했더니 당신이 이미 도둑질해간 것을 발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애플과 엠에스가 소송전을 벌이던 와중에, 그래픽 사용자 환경의 원조인 제록스는 1989년 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제록스 역시 이 소송에서 패소했다. 당시 애플 쪽은 “제록스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려왔을 수 있지만, 저작권은 아이디어가 아닌 아이디어가 표현된 방식만을 보호한다”며 “제품이 먼저 나왔다는 이유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후버댐에 대해 비버가 권리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1995년에도 사용자 환경과 관련해 중요한 판결이 미국에서 이뤄졌다. 스프레드시트로 불리는 표·수식 계산 프로그램 회사인 로터스는 ‘로터스1-2-3’을 베낀 볼랜드를 특허권 침해로 고소했으나 패소했다. 볼랜드가 로터스의 사용자 환경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맞지만, “소비자가 기존의 환경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특허를 피하려 제품마다 새로운 조작법을 익혀야 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라는 게 판결의 요지였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허 보호는 창작을 고취하기 위한 것인데, 최근에는 거대 사업자가 후발 진입자의 창의적 시도를 막는 용도로 활용되는 등 제도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며 “매우 복합적인 고려가 필요하고, 궁극적으로 법률가보다 시장의 판단이 더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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