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기에서 업그레이드의 가치가 높아졌다. 새 기기나 부품을 살 필요 없이 인터넷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최신 버전으로 갱신하면, 새로운 서비스와 기능이 생겨나는 게 대세다. 최근 애플이 운영체제(iOS5) 업그레이드로 무료 문자를 비롯해 200여 기능을 개선하자, 구글은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라는 맞대응 운영체제를 내놓았다. 그동안 주로 보안 결함이나 오류를 바로잡는 데 쓰여온 업그레이드가 고객 충성도 강화를 위한 신규 서비스 제공으로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업그레이드로 새 기능을 얻는 이익도 있지만 이로 말미암은 피로 역시 함께 늘고 있다.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데도 업그레이드에 내몰리기 때문이다. 최신 운영체제로 갱신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구입 당시 환경으로 쓰고 있다면, 사용자는 아무 불편을 못 느껴도 주변에서 ‘미개인’ 대우를 하기도 한다. 디지털화는 최신의 제품이 아닌 것을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무한 진전하는 게 속성이다. 디지털 경쟁이 격화돼 혁신 속도가 빨라지고 쉴새없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선보이면서, 이를 따라잡는 삶도 피곤해졌다. 구입하고 뒤돌아서면 구닥다리가 돼 있다.
불편을 느끼지 않아 업그레이드를 꺼리면, 기업이 “왜 더 좋은 서비스가 있는데 안 바꾸려 드느냐”며 고객을 압박하고 ‘알박기 소비자’라고 힐난하는 경우도 있다.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리고 사용자를 불편하게 내몰아 결국 떠나게 하는 방법도 동원될 정도다. 단기간에 2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끝내고 그 주파수 대역에서 4세대 서비스를 하겠다는 기업의 목표는 숱한 소비자 피해를 드러냈다. 내년에는 텔레비전 전파의 디지털 전환이 이뤄질 예정이다. 기업 경쟁논리에 이용자 피해가 방치된다면 앞으로 더 잦아질 업그레이드에서 소비자의 권리는 다운그레이드된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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